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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부터 이명박까지 끊이지 않았던 불법 정치자금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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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부터 이명박까지 끊이지 않았던 불법 정치자금 유혹

입력
2022.11.17 04: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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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연희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기간 동안 정치자금을 조성한 사실과 이를 숨겨온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연희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기간 동안 정치자금을 조성한 사실과 이를 숨겨온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정치에서 불법 정치자금은 고질병이었다. 민주화 이전까진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이 문제가 처음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만든 건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다. 이후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이명박(MB) 전 대통령 때까지 매 정권마다 되풀이됐다.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발단은 1995년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나온 폭로였다. 당시 박계동 전 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1993년 퇴임 직전 개설한 차명계좌에 예치된 128억2,700만 원을 제시하며 "시중은행 40개 계좌에 100억 원씩, 모두 4,000억 원의 비자금이 예치돼 있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이어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자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10월 27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때 그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5년 동안 약 5,000억 원의 통치자금이 조성됐다"며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통치자금은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정치의 오랜 관행이었다"고 밝혔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사과문 발표 20일 뒤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6,900만 원을 확정했다. 하지만 그에게 뇌물을 줬던 기업인 35명 중에선 8명만 기소됐다.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이유로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1992년 YS 대선자금 의혹

노태우 비자금 사건의 파장은 10년이 지난 뒤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도 미쳤다. 노 전 대통령이 2011년 출간한 회고록을 통해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 측에 3,000억 원을 지원했다"고 밝히면서다.

그러나 이 의혹은 진실 규명의 첫 발자국도 떼지 못했다. 당시 YS는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을 강하게 부인했고, 이후 별 다른 수사도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YS가 2015년, 노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세상을 뜨면서 진실은 영영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1997년 DJ 대선자금 의혹

김대중(DJ) 전 대통령 또한 노태우 비자금 사건의 여파에 휩쓸렸다.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 캠프 측이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가 친인척을 통해 670억 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이보다 2년 전인 1995년 DJ는 92년 대선 때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20억 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DJ는 '비자금 670억 원'에 대해선 강하게 부인했다.

이 의혹의 진실도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이 비자금 수사에 착수는 했지만, 그다음 날 수사 유보를 발표하면서다.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면 국가 전체의 대혼란이 올 것이 분명하다"는 이유였다. 이후 DJ가 당선되자, 검찰은 1998년 혐의 없음으로 비자금 의혹 수사를 종결했다.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까지 겹친 한나라당은 2004년 3월 쇄신을 다짐하며, 당사 건물을 매각하고 천막 당사를 택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까지 겹친 한나라당은 2004년 3월 쇄신을 다짐하며, 당사 건물을 매각하고 천막 당사를 택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2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가장 본격화한 것은 바로 2002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때였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캠프는 현금이 꽉 채워진 트럭을 통째로 받는 방식 등으로 대기업들로부터 무려 800억 원이 넘는 비자금을 받았다. 이후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체제로 전환, 여의도 공터에 천막당사를 세우는 등 오랜 기간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몸통 격인 이회창 후보는 수사망을 피해갔다. 당시 이 후보는 "대선자금에 관한 최종 책임은 제게 있고, 제가 감옥에 가겠다"고 말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이 후보의 측근 정치인 32명과 기업인 2명은 사법 처리됐다.


2002년 민주당 대선자금 사건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의 불똥은 2002년 대선 맞상대였던 새천년민주당에도 튀었다.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 캠프 또한 100억 원이 넘는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노 전 대통령은 "불법 선거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수사 결과 10분의 1이 넘으며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물론 이 사건에서도 노 전 대통령은 입건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측근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책임을 지고 옥고를 치렀다.

최근 주요 선거 정치자금법 위반 행위 관련 선관위 조치 현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최근 주요 선거 정치자금법 위반 행위 관련 선관위 조치 현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2007~2008년 MB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가장 최근의 불법 정치자금은 MB 전 대통령 '다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MB가 대선을 앞둔 2007년부터 취임 후인 2008년 4월까지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4억 원의 '공천 헌금'을 받은 사실이 포착된 것이다. 법원은 이를 불법 정치자금으로 인정했다.

강진구 기자
김윤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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