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 인터뷰
시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발간
슬픔의 고립을 응시함으로써 바란 것들
"98년 등단 때로 돌아간 듯"
"우리가 애도라는 과정을 잘 통과하고 있는가를 고민했어요. 사회적 죽음도, 제가 개인적으로 겪은 죽음도. 어떤 속도에 밀려 숙제처럼 처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일그러져 있나."
지난달 여섯 번째 시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를 낸 손택수(52) 시인은 거듭 죽음을 마주했던 자신의 40대를 그렇게 돌아봤다. 부친상을 당하고 세월호와 같은 거대한 사회적 죽음을 수차례 겪은 시기였다. '이 슬픔마저 왜 모조품 같은 것인지', 그 괴로운 시간의 끝은 이번 시집이 됐다. 특히 수록시 '죽음이 준 말'엔 그 시간이 잘 담겨 있다.
'조문을 가서 유족과 인사를 나눌 때면 늘 말문이 막힌다//…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쾌유를 빕니다/이런 유창한 관용구는 뭔가 거짓만 같은데/그럴 때 꼭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말이 그치는 그때, 어둠 속 벽을 떠듬거리듯 나는 말의/스위치를 더듬는다//그럴 때 만난 눈빛들은 잘 잊히질 않는다/그 눈빛들이 나의 말이다'
8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그는 "(애도 행위가) 일상적, 언어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침묵하고 멈칫하게 될 때"가 우리에게 필요한 성찰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마지막 문장 '그 눈빛들이 나의 말이다'는 시집 제목 후보이기도 했다.
서정시의 본령을 잇고 있다고 평가받는 손택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확장된 감수성과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 스스로는 "등단 때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했다.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40대까지 '좋은 시'를 쓰려고 했던 그는 이제 다른 마음을 먹었다. "좋다는 기준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시적인 '완미함'에 신경을 썼었고, 사람들도 나에게 그 점을 '서정'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불렀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서정이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액체처럼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깨달음 후 그의 시는 달라졌다.
3부를 채운 장시 '동백에 들다'는 새 도전이다. '빚만 안고 얼떨결에 떠밀리듯이 떠맡은 회사였다 대표이사는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없다는 걸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직원들은 대표이사 대신 시인이라면서 쑤군덕거렸다…' 출판사(실천문학사) 대표로 근무하던 시절의 고통과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을 맡으며 경험한 일들을 시로 끌어안았다. 전통적으로 시가 아니라고 읽힐 만한 것들이지만 "실패하고 찢어지고 파열될 것 같았지만 그 균열을 안고서"라도 써내고 싶었다고 한다.
한 꺼풀 벗겨 낸 '손택수의 서정'은 독자에게 통한 듯하다. 발간 후 약 보름 만에 2쇄를 발행했다. 덕분에 제목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에 대한 우려도 해소됐다. 시인은 "제목을 곧이곧대로 읽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의외로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그 역설을 잘 받아들인 것 같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표제작은 슬픔마저 고립된 도시의 삶을 응시하면서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연대와 공감의 바람을 담은 작품이다. 한 문장만으로도 그 깊이감 있는 역설이 와닿는다.
시집 곳곳에는 시를 쓰는 이유가 녹아 있다. 수록시 '이력서에 쓴 시'에서 그는 '구겨진 이력서에 나는 시를 쓰고 있네'라고 표현한다. '생년월일 사이엔 할머니의 태몽이 없고', 신춘문예 응모하던 날 '향을 피우고 계시던 어머니'도 없고, 근로 장학생을 응원하며 '밥을 사준 이름도 모를 그 행정실 직원'도 이력서엔 없어서다. 그렇게 '영영 옮겨올 수 없는 것들'이 넘치기에 시를 쓴다.
마지막 시에선 자신을 '순간의 발행인'으로 부른다. 이때 순간은 물리적 의미가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일상 시간의 질서를 벗어난 순간을 말한다. "24시간 중에 단 1분이라도 일상적 시간에서 벗어난 순간을 살 수 있다면, 그 1분이 24시간을 넘어서는 울림을 줄 수 있겠죠." 그 순간을 발행하는 일을 한다는 건 무겁지만 빛이 난다. '…아직 말이 되지 않은 소리로 공기를 떨게 하여/고막을 때렸을 때를 기억하지//…가끔씩은 펜을 놓고 소리를 내어보지 허공 속에 발행한 페이지를 향하여/어쩌면 저 공기 속에 오래전에 떠나보낸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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