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재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숨을 깊게 들이쉰다. 눈앞에는 하늘까지 닿은 순례길이 뻗어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땅을 밟을 때마다 마음속 고요가 퍼져 간다. 하염없이 걷다 보면 누구나 자신과 마주하는 곳,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고도원(70)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에게 올해는 ‘회복’의 해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3년간 중단했던 연례행사,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재개했다. 지난달 4일부터 보름간 문화재단을 통해 참여한 71명의 참여자와 함께 하루 최대 20, 30㎞를 걸었다. 8일 전화로 만난 고 이사장은 “산티아고에 오고 나서 영혼의 허기짐이 해소됐다. 너무나 다시 오고 싶었다”고 했다.
왜 산티아고일까.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산티아고(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이다. 천년 세월 동안 무수한 이들이 신앙적 희구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고 이사장은 “풍경이 놀랍도록 아름다울 뿐 아니라 상처 받은 이들, 신앙적 가르침을 갈구하는 이들의 땀과 눈물, 기도가 서려 있다”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함을 넘어 영적인 울림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순례길을 걷고 자기만의 경험을 얻어 간다. 고 이사장은 “어릴적 부모가 준 상처의 트라우마를 용서하며 오열하던 참석자, 사업상 어려움으로 엄습한 극단적 선택의 유혹을 뿌리친 참석자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고 이사장은 “비우고 비워낸 곳이 상처와 원한이 아니라 기쁨과 사랑으로 채워진다”며 “그게 걸으며 묵상하는 즐거움”이라고 설명했다.
반드시 드라마틱한 경험을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걷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영혼이 치유된다는 게 고 이사장의 생각이다. 삶의 어느 순간 멈춤과 휴식이 필요할 때 걷기를 통해 회복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한다. 고 이사장도 매일 걸으며 명상하는 ‘생활 속 순례자’다. 2010년 충주에 세운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하루 한 시간 이상을 걷는다.
‘아침편지 발행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 이사장은 소위 ‘잘나가는 언론인’ 출신이다. 일간지 정치부 기자를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을 맡았다. 그 치열했던 시간 속 ‘갑자기 몸이 굳는’ 순간을 맞았고, ‘나머지 인생은 덤으로’ 살겠노라 다짐했다. 고 이사장은 현재 약 400만 명이 받아 보는 아침편지, 명상센터, 걷기 프로그램 등을 통해 삶에 지친 이들의 손을 맞잡고 있다.
무수한 길을 걷다 보니 새로운 길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고 이사장은 “함께 걷기와 같은 한국형 문화생태계가 구성됐으면 좋겠다”며 '아침편지 트래킹 클럽'(아트클럽) 바람을 밝혔다. “살면서 여러 변수가 생기고 직장,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죠. 어디서 이런 갈등을 풀 수 있을까요. 저는 무조건, 천천히,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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