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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아프다기에 후원했더니 도박에 쓴 ‘경태아부지’ 법정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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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아프다기에 후원했더니 도박에 쓴 ‘경태아부지’ 법정 선다

입력
2022.11.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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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반려견 '경태'가 반려인 김씨와 함께 택배 배송을 하던 모습. '경태아부지'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2020년 반려견 '경태'가 반려인 김씨와 함께 택배 배송을 하던 모습. '경태아부지' 인스타그램 캡처

유기견을 입양한 뒤 함께 일하는 사연으로 유명해진 전직 택배 기사가 후원금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 2부는 2일, 전직 택배기사 김모 씨와 그의 여자친구를 사기 및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건을 주도한 것은 김씨의 여자친구로 검찰은 그를 구속기소했습니다. 공범인 김씨는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김씨는 2020년, 반려견 ‘경태’를 데리고 택배 배송 업무를 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동물학대 의혹에 휘말렸습니다. 택배 짐칸에 경태를 묶어둔 사진 한 장이 오해를 부른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는 분리불안을 앓는 경태를 돌볼 시간이 부족한 까닭에 업무 중에 반려견을 데리고 다닌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이 알려진 뒤 택배회사 CJ대한통운도 경태를 ‘명예 택배기사’로 임명해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태희’라는 유기견을 더 입양했으며 CJ대한통운은 태희 역시 2호 명예 택배기사로 임명했습니다.

'동물학대' 의혹이 해소된 뒤 경태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자 택배사 CJ대한통운은 경태를 '명예 택배기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경태아부지' 인스타그램 캡처

'동물학대' 의혹이 해소된 뒤 경태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자 택배사 CJ대한통운은 경태를 '명예 택배기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경태아부지' 인스타그램 캡처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던 이들의 사연은 지난 4월, 반전을 맞았습니다. 김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택배 차량이 고장 나 배달 일을 할 수 없게 됐다’며 도움을 호소하며 후원금을 모집했습니다. 심장이 좋지 않은 태희의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일부 후원자에게는 개별적으로 연락해 수십만원 상당의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부금품법상 1,000만원 이상의 금액을 모금하려면 사용계획서를 등록해야 합니다. 그러나 김씨는 두 차례에 걸쳐 기부금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사용계획서를 등록하지 않았고, 이 점이 문제가 되자 SNS를 통해 기부금을 반환하겠다고 공지했습니다. 이 반환은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약속한 기부금 반환이 이뤄지지 않자, 후원자 중 일부가 그에게 경위를 묻기 시작했고, 김씨는 3월 말 SNS를 폐쇄한 뒤 모습을 감췄습니다.

김씨가 잠적한 뒤,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그가 일부 후원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한 겁니니다. 한 후원자는 10회에 걸쳐 1,533만원의 돈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결국 후원자들은 경찰에 김씨를 고소하기로 결심했고, 경찰은 4월부터 이들을 수사한 끝에 지난 10월, 대구 모처에서 김씨와 그의 여자친구를 검거했습니다. 김씨 일당은 주로 현금을 사용했으며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경찰 추적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장에서 이들이 검거되는 과정에 경태와 태희의 신변도 확인됐습니다. 이들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태희를 김씨에게 입양 보냈던 동물보호단체가 두 마리를 모두 보호하고 있습니다.

김씨가 여자친구와 함께 후원금 횡령 혐의로 검거된 뒤 태희(오른쪽)를 김씨에게 입양 보냈던 동물단체가 경태와 태희를 보호하고 있다. '경태아부지' 인스타그램 캡처

김씨가 여자친구와 함께 후원금 횡령 혐의로 검거된 뒤 태희(오른쪽)를 김씨에게 입양 보냈던 동물단체가 경태와 태희를 보호하고 있다. '경태아부지' 인스타그램 캡처

당초 신고를 받은 경찰은 피해액을 5억3,000만원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러나 계좌 추적 등 보완수사를 통해 8,000만원의 추가 피해가 더 드러났고, 이는 모두 검찰 공소장에 포함됐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모은 6억1,000만원의 돈을 당초 약속했던 반려견의 치료비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이들은 후원금을 자신의 빚을 갚거나 도박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타까운 동물들의 사연을 내세워 후원금을 모은 뒤 모집 목적과 다르게 돈을 사용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20년에는 전남 여수시의 한 사설 동물보호소 운영자가 후원금을 들고 잠적한 사례가 있었으며, 같은 해 유기견을 후원한다는 명목으로 물건을 판매하고 후원금을 받은 유튜버가 그 돈을 불법 도박에 사용한 예도 있습니다.

동물권을 연구하는 변호사단체 PNR의 김지혜 변호사는 지난 4월 동그람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사람들의 선의를 이용해 사익을 챙기려 한 이들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후원자 역시 단순하게 ‘귀여우니 소액 후원하자’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정확한 사정에 대한 고려 없는 기부는 동물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행위"라며 "기부에도 사용처와 목적 등을 명확히 인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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