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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10일' 랜턴 방전 절망의 순간에 "아직 죽을 때 아니다, 무조건 살아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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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 10일' 랜턴 방전 절망의 순간에 "아직 죽을 때 아니다, 무조건 살아나가야"

입력
2022.11.06 19:10
수정
2022.11.06 20:1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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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광산 기적 생환 광부 가족 인터뷰]
생존한 두 사람 '영혼의 단짝' 2인실서 함께
"닭백숙 소주 먹고 싶어" "미역국과 콜라도"
이태원 소식에 "내 생환이 희망 됐다니 다행"
""잘 회복하고 있지만, 트라우마 치료 필요"

경북 봉화의 광산에서 고립됐다 구조된 박정하(62)씨가 안대를 쓰고 침대에 누워 있다. 박씨 아들 근형씨 제공

경북 봉화의 광산에서 고립됐다 구조된 박정하(62)씨가 안대를 쓰고 침대에 누워 있다. 박씨 아들 근형씨 제공

"고립 10일째, 플래시 라이트가 나가면서(방전되면서) 잘 버텨왔던 아버지도 함께 있던 동료에게 처음으로 '힘들 것 같다'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날(4일)이 바로 아버지가 다시 바깥 세상을 본 날입니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지하 갱도에 매몰된 채 장장 '221시간'을 버틴 끝에 살아 돌아온 선산부(작업반장) 박정하(62)씨의 아들 근형(42)씨가 극적인 구조 순간을 6일 전했다. '마지막 등불'이었던 플래시 라이트 불빛이 점점 잦아들며 희망의 끈을 놓으려는 순간, 암흑 속에서 나타난 구조대 불빛이 그를 구원했다.

어두컴컴한 땅 속의 고립이 갑자기 시작됐다.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지하 갱도에서 후산부(보조 작업자) 박모(56)씨와 함께 레일 작업을 하고 있던 박씨의 귀에 갑자기 '우당탕탕' 굉음이 들렸다. 심상치 않다고 느낀 박정하씨는 동료와 함께 소리가 난 쪽을 확인했다. 처참하게 무너진 철빔과 나무조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상과의 유일한 연락망인 엘리베이터 인터폰도 망가져 다급한 땅 속 상황을 알릴 방법도 없었다.

고립 생활이 길어질 것으로 직감한 '27년 베테랑'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마음 다잡기였다. 근형씨는 "같이 있던 동료 분의 경력이 짧아 매우 당황해했다고 한다"며 "아버지가 '살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말하면서 제2수직갱도로 통하는 탈출로를 찾아 발 닿는 곳을 다 돌아다녔다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탈출로는 없었다. 박씨는 주저 없이 땅속 생존을 결심했다. 다행히 고립된 장소의 환기가 원활해 산소 부족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물이 안 떨어지고, 물이 안 고여 있어 체온을 유지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를 찾았다. 불어오는 바람은 갱도에서 주운 비닐로 친 방풍막으로 막았다. 그래도 추위가 느껴지자 나무를 톱으로 잘라 땔감으로 만들었다. 젖은 나무에 불이 붙지 않자, 작업 때문에 챙겨간 라이터로 산소 용접기에 불을 붙여 나무를 말려 기어코 모닥불을 피웠다. 생수가 떨어지자 지하수를 받아 먹고, 챙겨간 커피믹스를 밥처럼 먹으며 아득바득 버텼다.

박정하씨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최악의 상황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형씨는 "아버지가 지하에 계실 때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무조건 살아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하셨다고 한다"며 "죽더라도 물려줄 건 물려주고, 정리할 건 정리하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버티셨다"고 전했다.

경북 봉화의 광산에서 고립됐다 구조된 선사부 박정하(62)씨의 왼쪽 검지 손톱이 갈라져 있다. 박씨 아들 근형씨 제공

경북 봉화의 광산에서 고립됐다 구조된 선사부 박정하(62)씨의 왼쪽 검지 손톱이 갈라져 있다. 박씨 아들 근형씨 제공

간간이 들려온 발파 소리는 광부들에게 큰 희망이었다. 근형씨에 따르면, 두 광부는 구조를 위한 발파 소리를 총 5회 정도 들었다. 생존을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박씨는 동료 광부와 괭이를 들고 암석을 팠고, 작업장에 남아 있던 화약을 모아 총 2회에 걸쳐 직접 발파하기도 했다. 근형씨는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발파를 했는데, 혹시 다른 생존자가 있었다면 피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발파 소리가 구조대에 닿지는 않았지만, 생존을 위한 필사적 열망이 하늘에 닿았는지 이들은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구조된 두 광부는 경북 안동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구조 당시 갱도를 자력으로 걸어나올 정도로 건강 상태가 양호했던 이들은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근형씨는 "아버지가 아침에 죽을 드셨고, 안대도 간헐적으로 벗어 1시간은 쓰고, 1시간은 벗는 등 건강을 잘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흘 동안 서로 의지하며 생존한 탓인지, 둘은 '영혼의 단짝'이 되어 1인실 전원도 사양하고 2인실에서 함께 치료받고 있다.

박정하씨는 자신이 세상과 단절된 사이 발생한 이태원 참사 소식을 구조 이후에 뒤늦게 알았다. 근형씨는 "아버지가 지인들이랑 뉴스를 통해 이태원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걸 전해 듣고 많이 놀라셨지만 이내 '나의 생환이 국민들에게 희망이 됐다니 다행'이라는 말을 하셨다"고 전했다.

박정하씨는 퇴원하면 닭백숙을 먹고 싶다고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만나 "뜨끈한 밥에 소주 한잔 하고 싶다"고 말했던 그는 아들에게는 "다 나으면 태백에 닭백숙을 맛있게 하는 곳이 있으니 먹으러 가자"고 했다. 보조작업자 박씨도 구조 직후 "미역국과 콜라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근형씨는 구조된 두 광부가 장기간 고립에 따른 트라우마를 겪고 있어 심리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형씨는 "두 분 모두 간밤에 주무시던 중 경기를 일으키는 등 트라우마가 남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며 "향후 안정을 취하고,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안동=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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