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서 활동하는 안무가 마리아 하사비
옵/신페스티벌 공연 '투게더' 들고 내한
“예술이 소수만 즐기는 엘리트주의로 흐르는 경향에 대해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형 미술관 같은 대중적 공간에서 공연하는 것을 즐기죠. 관람객이 이런 공간에서 현대예술을 한 번 접하는 것만으로도 삶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이프러스 출신 설치 미술가 겸 안무가인 마리아 하사비(49)는 지난 2016년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에서 선보인 ‘플라스틱’이라는 작품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플라스틱'은 관람객이 드나드는 계단과 소파 위, 바닥에 죽은 듯이 가만히 쓰러져 있는 퍼포먼스다. 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하사비는 "모마는 뉴욕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방문하는 관광지 같은 곳"이라며 "그곳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들이 계단처럼 예술 작품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공간에 작품을 배치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관찰하고자 했다”고 '플라스틱' 공연 당시를 회상했다.
하사비는 뉴욕 베시어워드 우수작품상, 허브앨퍼트재단 예술상, 구겐하임 펠로십 등을 수상하고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 작품을 선보인 주목받는 예술가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2015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된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데 이어 20일까지 열리는 제3회 옵/신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옵/신 페스티벌은 세계 동시대 공연예술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국내 대표적 다원예술 축제다.
하사비는 5, 6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투게더’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2019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퓰리처재단미술관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한 변이 2m인 정사각형 공간 안에서 그와 무용수 한 명이 몸을 붙인 채 1시간 동안 함께 움직이는 퍼포먼스다. 관람객의 자유로운 움직임 속에 진행된 '플라스틱'과 달리 관객이 조용히 앉아 감상하는 연극적 공연이다.
그렇지만 두 공연 공히 움직임의 속도를 최대한 느리게 해 퍼포먼스를 스틸 사진처럼 보이게 하는 하사비의 안무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조각과 무용 사이에 있는 듯한 매우 느린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이유에 대해 "고요함과 느림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인류는 더 이상 느리게 일하지 않죠. 무대 위 움직임조차 빠른 동작뿐이기 때문에 어떤 동작을 매우 천천히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인 지난해 내놓은 '히어'라는 작품의 움직임은 더 느려졌다. 그는 "팬데믹을 거치며 한 인간으로서 수동적 입장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작이 평소보다 더 느려졌다"고 했다.
하사비는 이태원 압사 참사로 국가애도기간이 지정되면서 공연계의 여러 일정이 취소되는 와중에 입국했다. 뉴스를 통해 관련 소식을 접했다는 그는 영향력이 즉각적이고 폭넓은 스포츠와 달리 아직은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해 소수에 의해 움직이는 예술이 멈춰 서는 것이 애도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다.
"예술은 생존에 필수적이지는 않죠. 하지만 저로서는 예술이 없는 삶은 너무 슬플 것 같습니다. 그게 무용이든, 영화든 예술을 통해 삶의 다른 순간을 맞이할 수 있죠.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도 예술은 없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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