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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감시도, 괴롭힘도 참아야 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뛰어내려야 증명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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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감시도, 괴롭힘도 참아야 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뛰어내려야 증명될까"

입력
2022.11.16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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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 괴롭힘. 게티이미지뱅크

김지민(가명·29)씨는 최근 5개월간 월급을 받으며 꼬박꼬박 회사에 다녔지만,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인정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연차 휴가를 하루도 쓰지 못했고, 어쩌다 법정 공휴일에 쉬게 되면 일당을 월급에서 뗐다. 지민씨가 다니던 회사는 직원이 4명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와 그의 친구가 운영하는 작은 회사에서 괴롭힘은 신입사원인 지민씨에게 집중됐다. 상사는 점심 식사로 냉동 도시락을 던져주며 "5인 미만 사업장이라 원래 안 줘도 되는 건데, 다이어트하라고 주는 것"이라고 했다. 회사는 양이 적은 싸구려 도시락을 냉동실에 잔뜩 넣어두고, 매일 하나씩 지민씨에게 줬다.

사무실 내 폐쇄회로(CC)TV로 지민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압박했고,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인 용무를 수시로 시켰다. 심지어 마지막엔 상사 지시에 따라 지민씨가 수행한 업무 때문에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며, 1,200만 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회사 손해가 지민씨 때문이라는 근거는 없었고,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결국 지민씨는 쫓기듯 회사를 나왔다.

지민씨는 "매일 나를 마치 종 부리듯 대했다"며 "말도 안 되는 걸 시킬 때마다 높은 데서 뛰어내려야 이 힘듦이 증명될까 생각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여러 노동 관련 단체에 상담을 신청했는데, 하나같이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이 대상이 아니어서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며 "그만두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정착했지만... 대기업-소기업 '근무 환경의 양극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관련 "교육 경험 있다" 응답자 비율(단위: %)
(자료: 직장갑질119)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나면서 법 적용을 받는 대기업과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상시 근로자 수 5인 미만 소규모 기업의 '근무 환경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대기업들은 그나마 '직장 내 괴롭힘'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인식 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법의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괴롭힘이 더욱 직접적·노골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고 답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36%로 전체 직장인 평균(32.5%)보다 많았다. '괴롭힘이 심각하다'고 답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비율은 52.1%로, 전체 직장인 평균 30%보다 훨씬 높았다.

'직장 내 괴롭힘'은 법이 금지한 행위라는 인식도 기업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올해 9월 직장갑질119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관련 교육을 받은 적 있다고 답한 근로자는 300인 이상 기업의 경우 67.2%였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21.2%에 불과했다. 직장갑질119는 "일터에서 약자일수록 법에 대해 잘 모르고, 예방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괴롭힘을 경험할 경우, 신고해도 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에 참거나 퇴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작은 사업장일수록 괴롭힘 방지법 필요... 비용 문제 아닌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2019년 7월~2022년 6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결과(단위: 건)
(자료: 고용노동부)

작은 사업장일수록 괴롭힘 발생 빈도가 높고, 사후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직원들이 줄줄이 퇴사해 5인 미만 사업장이 된 A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 B씨는 "직원이 줄어들자 괴롭힘의 강도가 더 심해졌다"며 "내일채움공제와 퇴직금 때문에 버텼는데, 상사의 폭언이 내게 집중되고, 횟수도 늘어나면서 결국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며 치료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고용보험 가입자 1,455만 명 중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약 247만 명으로 17% 수준이다. 임금노동자 6명 중 한 명은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셈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고용부에서 따로 관리조차 하지 않고 있다. 고용부가 올해 7월 공개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결과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 건은 '기타'로 분류돼 처리 대상에서 제외된다.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범위를 5인 미만 사업장까지 넓힐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한 근거는 '영세 사업장의 비용 부담 어려움'인데, 괴롭힘 금지법 시행에 별도의 비용이 든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근로계약서 작성, 임금명세서 교부, 최저임금·주휴수당 제도는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기업에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신하나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결국 사회가 어떤 가치를 먼저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며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영세기업의 비용 문제보다 노동자의 인권이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시행령 개정만으로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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