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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한 이들의 감정학

입력
2022.11.03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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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작 2>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편집자주

※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5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김지연 작가. 문학동네 제공

김지연 작가. 문학동네 제공


김지연은 첫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를 내기 전부터 울림 있는 단편들로 기대를 받아왔다. 아홉 편의 단편들에는 감염병 시대를 넘는 시간대가 접혀 있다. 소설집은 편편이 만날 때보다 김지연의 작품세계가 한결 깊고 너르며 동시대적이다는 인상을 준다.

김지연은 기분과 감정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가 같다. 우리는 때로 “너는 늘 네 슬픔이 가장 크지” 하고 힐난한다. 소설의 인물은 반문한다. ‘안 그런 사람도 있나? 자신의 것보다 다른 사람의 슬픔이 더 큰 사람도 있나?’ 김지연의 소설에는 관계에서 갖는 감정 소모가 큰 인물들이 등장한다. 관계가 나빠질까 봐 지레 남들에게서 자신을 싫어할 요인들이 없나 찾으려고 애쓰거나 자기 맘대로 상대를 이상화했다가 뒤통수를 맞는다. 자신을 들키지 않으려고 좁게 살아가고, 늘 애매모호한 사람이 되며 부당하게 당하면서도 자기 감정을 검열한다. 그래서 이들은 무감해지자고, 태연해지자고 거듭 다짐한다. ‘함의가 있다고 넘겨짚지 말자.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걸로 알자.’ 그럼에도 상대에게 농담이라고 얼버무리거나, 농담이었다는 소리를 듣는 상황을 맞는다. 이 인물들은 마음에 있는 소리를 삭이고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김지연의 인물들에게 공감이 가는 이유다.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우유부단함이라고 했거니와 사실 이런 태도는 관계에 대한 안간힘이거나 세계로부터 받고 있는 상처의 증상일지 모른다. 세상의 여하한 관계는 저 외로운 사람들의 감정 소모 위에서 간신히 유지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김지연의 인물들은 삶에 대해서 윤리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생에 대한 질문이든 태도든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들인 것이다. ‘때로 울음이 정화인 것은 어떤 살해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걸 보라.

감정을 다하는 인물들을 앞세워 작가는 가족, 고향, 연애, 청년, 여성의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아닌 한마디가 울림 가진 문장이 되도록 삶에 좌표를 찍어주는 게 소설 쓰기라면 김지연의 소설들은 그 일을 착실히 해낸다. 인물들이 삶으로 걸어 들어가는 풍경이 역력하다. 우리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 그런 게 뭐가 중요하나”라고 읊조리며 몸을 돌리는 순간이 삶의 회피거나 막다른 데가 아니라 새롭게 삶이 환기되는 지점이라는 걸 작가는 매우 절박하게 얘기한다. 김지연이라는 비범한 작가의 출발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전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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