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당선으로 브라질 '분홍물결' 합류
"좌파 정부들과 사회 정책 의제 시너지"
후진타오와 8회 만나는 등 중국과 친밀
'앞마당 지켜라' 美 치열한 다툼 벌일 듯
중남미 ‘핑크타이드 2.0’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졌다.
좌파의 대부 아이콘으로 불리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7) 전 브라질 대통령의 귀환으로 브라질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중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그가 재집권하게 되면서 ‘앞마당’ 중남미에서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던 미국은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사상 첫 중남미 6개국 ‘좌파 정권’
30일(현지시간) 룰라 당선인이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기를 거머쥐면서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칠레 △페루 등 중남미 경제 규모 상위 6개국을 좌파가 휩쓸게 됐다. 6개국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제 우파가 집권한 중남미 국가는 과테말라, 에콰도르, 파라과이, 우루과이뿐이다.
'핑크타이드'(분홍 물결·Pink tide)는 1990년대 중남미에 온건 좌파 정권이 연달아 출범한 현상을 가리킨다. 빨강이 상징하는 정통 사회주의 좌파보다 연성 성향이었다는 뜻에서 '핑크'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1990년대 말~2000년대 말 중남미 10개국 정권을 좌파 정당이 잡아 반미 연합을 형성했던 것을 ‘핑크타이드 시즌1’로 부른다면, 10여 년 만에 ‘시즌2’가 본격화한 셈이다.
최근 10여 년간 우파에 기울었던 균형추가 다시 왼쪽으로 기운 결정적 계기는 코로나19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그 틈을 파고든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던 상황에서 우파 정권의 감염병 대응 실패와 부정부패, 경제난, 양극화 심화가 맞물린 결과이다.
2018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과테말라(2019년), 볼리비아(2020년), 페루(2021년), 콜롬비아(2022년)에서 줄줄이 좌파가 정권을 잡았다. 인구 2억여 명 대국이자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2021년 기준 2,150조 원)의 중남미 최대국 브라질이 합류하며 화룡점정을 찍게 됐다.
룰라의 승리로 중남미 국가 간 연대는 더욱 끈끈해질 전망이다. 그는 2003~2010년 브라질 재선 대통령을 지내면서 글로벌 자본을 적극적으로 도입, 경제성장을 도모하며 분홍빛 물결을 이끌었다. 외신들은 룰라가 이번에도 중남미 좌파 정부들과 시너지를 내며 사회 정책 의제 강화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몇 년간 좌파 정권이 중남미 주요 지역에 들어서면서 극우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한 브라질과의 외교 관계가 냉각됐지만, 룰라의 승리로 다시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밀착’에 난처해진 미국
미국의 입장은 난처해졌다. 본토 코앞에서 중국의 입김이 더 세지게 된 탓이다. 중국은 최근 10여 년간 중남미에 무역과 외교 역량을 집중했다. 코로나19 기간에는 중국산 백신을 적극 지원하며 공을 들였고,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제안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99년 남미 모든 나라의 역외 최대 교역국은 미국이었지만 현재는 대부분이 중국이다.
룰라와 중국의 인연도 깊다. 브라질과 중국은 룰라의 집권 기간 러시아,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구성한 협력체 브릭스(BRICS)를 중심으로 밀착했다. 룰라는 2004년 브라질·중국 고위급 위원회 창설도 주도했다.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8차례나 만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같은 밀착은 브라질에 우파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돼왔다. 지난해 대(對)브라질 중국 투자액은 8조 원(60억 달러)으로 201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국은 브라질 원자재와 농산물 최대 수입국이기도 하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룰라가 브라질 외교정책 우선순위를 중국에 두고 양국 관계를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이니셔티브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국을 최대 ‘전략적 경쟁자’로 상정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로선 앞마당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 더 치열한 다툼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됐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바이든 대통령은 브라질 대선결과 발표 직후 “앞으로 여러 달, 여러 해 동안 양국 사이의 협력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 함께 일하게 될 것을 고대한다”며 중국보다 빠르게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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