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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주주의 어디서 멈추었나

입력
2022.10.31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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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김성식전 국회의원

위기 국면에도 죽기살기식 정치
87년 체제 극복하려는 논의 필요
개혁 나선 정치인에게 힘 보태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상은 계속 어수선했고 정치는 거칠게 싸웠다. 이재명 대표의 측근이 '불법 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검찰과 민주당은 곳곳에서 충돌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할 일은 없었다'고 일축하며 국회에서 시정 연설을 했고, 민주당은 피켓 시위를 하며 불참했다. 대통령 예산안 시정 연설 초유의 파행은 정치 황폐화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친일'과 '종북'의 낙인찍기 싸움도 금도를 넘어섰다. 도심 한복판도 격렬한 주장들에 의해 분점되었다.

국내외 사정이 엄중한데, 죽기살기식 정치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집권세력에게 정국의 일차적 책임이 있으나, 다음 총선까지 여야 모두 모질게 적대의 길을 갈 기세이고, 국민적 질책이나 제언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87년 민주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이래 '대통령을 내 손으로' 8번 뽑았고, 정권 교체도 여러 차례 했다. 9번의 국회의원 총선 때마다 40% 안팎으로 물갈이됐다. 그런데 왜 정치는 더 나빠졌는가, 우리 민주주의는 어디에서 진화를 멈추었는가. 사람만 탓할 것이 아니라 정치 제도 문제도 깊이 성찰해봐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국정 운영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다. 승자독식의 대선판에 '올인'하는 정치로 치달았고, 대통령 비서실 중심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에 국회는 들러리로 전락했다. 여당은 돌격대가 되었고 야당은 비토정치로 맞섰고, 여야가 바뀌면 입장이 표변하는 '내로남불'은 염치없이 반복되었다. 정당은 리더십을 배양할 능력을 상실하고, 급조된 대선 캠프가 정당을 뒷전에 밀어내기도 한다. 1등만 당선되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는 의석에 반영되지 않는 '죽은 표'를 양산했고 지역 독점의 폐해를 깊게 했다. 이렇듯 국정 운영 시스템과 정치 제도 개선이 지체되면서 무능하고 적대적인 진영 정치가 심화되어 왔다.

우리나라는 그간 민간 경제의 영역이 커지고 사회는 다원화되었다. 이제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선거의 민주화 단계를 넘어서, 정치제도의 민주화와 선진화를 축적해 나가야 한다. 40%대를 득표한 대통령을 한 명 뽑은 후에 그가 독주하는 걸 그냥 지켜봐야 하는 대권의 시대로부터, 국민주권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이 일상에서 제도적으로 작동하는 시민권의 시대로 가야 한다. 그래야 혁신생태계 구축,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복지와 조세에 대한 합의 등 정당 간 정책 조율과 공동의 책임을 요구하는 복합 과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 낡은 정치 제도를 시대에 맞게 바꾸는 것은 바로 국민의 삶의 개선과 직결된다.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등 더 나은 민주공화국을 위한 제도 개선에 대해 앞으로 많은 공론화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출발점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개혁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아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등 대안을 논의하고, 위성정당은 막아야 한다. 국민의 지지에 비례해서 국회 의석이 배분되도록 선거제도가 바뀌면, 국민 대변과 의사 결정 등 국회 기능이 정상화될 수 있으며, 나아가 정책연합이나 연립내각 등 연합정치도 가능해진다.

주목은 받지 못해도 정치제도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은 이달 초에 20명의 여야 의원 공동발의로 공직선거법, 정당법 등 정치개혁 4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이탄희 의원, 국민의힘 김용태 전 최고위원, 정의당 조성주 전 부의장 등도 초당적인 '정치개혁 2050' 모임을 시작했다. 정치를 바꾸는 데 필수적인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 등에 진력하겠다고 한다. 국민들이 정치제도 개선에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낼 수 있도록 더 많은 국회의원들이 나서야 할 때다.

김성식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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