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1.5도
2015년 파리 기후변화 협정은 인류가 멸종 위기에 처하지 않으려면 지구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까지'로 제한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목표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이대로 가면 지구는 이번 세기말에 최대 2.6도 더 뜨거워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온실가스 대량 배출로 지구 온난화를 초래한 선진국들이 나 몰라라 하는 사이 기후 변화의 직격탄은 가난한 나라를 향하고 있다. 최근 들어 화석연료 기업들은 더 부유해지고 있다. 기후 재앙의 지독한 딜레마이다.
"세기말까지 최대 2.6도 상승… 이젠 급진적 대응을"
유엔환경계획(UNEP)은 27일(현지시간) '배출 격차 보고서'를 통해 2100년이 되면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2.4~2.6도 오른다고 밝혔다. 또 각국이 내놓은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더라도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묶어두는 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 모인 195개국은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유지하기로 하는 내용의 파리협정을 채택했다. 지구상 생물 생존의 최후 방어선으로 1.5도를 잡은 것이다.
이번 유엔 보고서는 1.5도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 세계가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 양과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사이의 격차를 분석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를 1.5도 이하로 억제하려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보다 45% 줄여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각국이 약속한 배출 감소량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의 1%에도 미달한다.
잉거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은 "이제 점진적 변화를 얘기하던 시기는 지났다. 급진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기후 재앙의 역설
하지만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기후 위기를 야기한 국가와 그 피해를 보는 국가가 별개인 탓이 크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은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이다. 올해 초 공개된 미국 다트머스대학 연구에 따르면, 1990~2014년 미국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전 세계는 2조 달러(2,851조 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역시 기후 불량국인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이 입힌 손실도 4조1,000억 달러(5,845조 원)에 달한다. 5개국이 쌓은 손실은 연간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11%에 해당한다.
이 와중에 화석연료 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지정학적 변수가 터지면서 프랑스 에너지 대기업 토탈에너지와 영국계 셸은 올해 2분기 역대 최대 분기 이익을 기록했고, 3분기에도 각각 99억 달러(약 14조1,000억 원)와 95억 달러(13조5,000억 원)의 이익을 냈다.
기후 재앙으로 눈물 흘리는 건 가난한 나라들이다. 이번 여름 파키스탄에 닥친 대홍수가 대표적이다. 파키스탄은 1959년 이후 전 세계가 쏟아낸 온실가스 가운데 겨우 0.4%를 배출했지만, 올해 홍수로 1,500명 이상이 숨지고 300억 달러(42조8,000억 원)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봤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지구 기온이 2.9도 상승하면 기후 위기에 취약한 65개국의 평균 GDP는 2050년 20%, 2100년 64%까지 급감한다. 2030년까지 이 국가들이 기후 재난으로 인해 입는 피해액은 최대 5,800억 달러(827조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배출량 80% G20이 앞장서야"
다음 달 6일 이집트에서 열리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부자 나라와 가난한 피해자 나라 사이의 기후 불평등을 해소할 방안이 논의된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 화석연료 기업에 '횡재세'를 물리는 방안도 의제에 올라 있다.
리처드 와일즈 미국 기후보전센터장은 "횡재세 등으로 마련된 기금은 기후 위기 취약국에 생명줄이 될 것"이라며 "지구를 오염시킨 국가와 기업이 얼마를 지불해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후 재앙이 앗아 간 사람과 동·식물의 생명과 문화유산, 해수면 상승으로 영토를 잃어버린 국가의 주권 등은 돈으로 되돌릴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탄소 배출량 상위권 국가들은 여전히 태연하다. 지난해 COP26에서 온실가스 감축 강화를 약속한 193개국 중 24개국만 실행 계획을 유엔에 제출했다. 현재 기준 온실가스 배출 1위인 중국과 2위인 미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제출조차 하지 않았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긴급한 국내 현안을 이유로 COP27에 불참하겠다고 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를 차지하는 주요 20개국(G20)이 앞장서야 한다"고 했지만, 그의 호소가 먹힐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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