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극렬 지지층, 상대편 혐오·저주만
다수 국민 무관심, 6년 전 '촛불혁명'과 대비
정치권, 갈등 해소는커녕 편가르기 부추겨
요즘 주말이면 서울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서는 마치 ‘대선 연장전’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윤석열 퇴진”과 “이재명 구속”. 서울시청 교차로 횡단보도를 기준 삼아 양쪽으로 나뉜 보수ㆍ진보단체는 상대를 향해 쉴 새 없이 날 선 구호를 쏟아내고 있다.
정확히 6년 전 수백만 개 촛불이 타올랐던 광화문광장의 집회가 금지되자 열기는 ‘거리’에서 되살아났다. 하지만 보복, 매국, 탄핵 등 거친 언사가 뒤섞인 대로에는 혐오와 저주만 난무한다. 합리적 토론의 장은 실종된 지 오래다. 진영 논리에 매몰돼 두 동강 난 거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할 수밖에 없다.
Again 2016?... 보수·진보 新격전장 세종대로
진보단체 ‘촛불행동’은 8월부터 토요일마다 청계광장, 시청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22일처럼 대절한 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상경하는 ‘집중행동’도 내달 19일 한 차례 더 예정됐다.
보수진영의 텃밭은 동화면세점과 대한문 앞이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등은 이곳에서 수개월째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주도권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듯 양측의 집회 경쟁은 10월 들어 부쩍 달아오르고 있다. 이달 서울 남대문ㆍ종로경찰서에 신고된 집회는 71건. 서울 31개 전체 경찰서에 신고된 집회(254건)의 28%에 해당한다. 개천절(3일), 한글날(9일) 연휴가 들어 있어 횟수는 더 늘었다. 28일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에 따르면, 보혁 세력이 오랜만에 같은 장소에 총집결한 22일의 경우 종로구 사직동 등 세종대로 인근 4개 행정동에 약 27만2,242명(오후 4시 기준)이 머물렀다. 물론 전부 집회 참가자는 아니지만, 이들 행정동 인구(2만5,621명)의 10배 넘는 사람들이 거리에 있었던 셈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용산시대’가 열렸으나 촛불집회의 역사가 어린 광화문이 갖는 장소적 중요성은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욕설, 비난, 선동"... 국민은 변질된 거리정치 외면
민의를 표출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정치행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장외 대결 구도가 여야의 편가르기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 메시지는 없고, 장시간 자기 방어와 가짜뉴스, 선동 구호만 무한 반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시민들을 거리로 이끌었지만 정치권의 구태를 극복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갇혀 있는 것이 2022년 광장의 현 주소다.
여론의 반응이 달가울 리 없다. 2016년 탄핵 정국과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당시 중도층을 동력 삼은 광장정치의 위력은 결국 부도덕한 정권에 철퇴를 내렸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6년 전 촛불의 시작은 진보진영이 주도했지만, 중도와 일부 보수세력까지 가세하면서 혁명으로 이어졌다”며 “진보든 보수든 상대의 주장을 귀담아 듣지 않고 악마화하는 지금과 확연히 대별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생각도 대체로 비슷하다. 광화문 인근에서 일하는 회사원 김모(28)씨는 “촛불집회 때는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참여했다”면서 “최근 집회는 다짜고짜 욕을 하거나 정당 입맛에 맞는 거짓 구호가 대부분”이라고 비판했다. 효자동 주민 박모(54)씨도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억지 주장만 되풀이하는 참가자들을 보면서 이런 집회의 자유까지 보장해야 하나 회의감이 든다”고 혀를 찼다.
갈등 해소의 주체가 돼야 할 정치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니 극단의 거리 정치를 부추기는 주범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세종대로 집회는 다수 국민은 관심 없는데 정치권과 극렬 지지층끼리만 맞붙은 ‘그들만의 리그’인 것 같다”며 “누가 더 나쁜지를 따지는 싸움을 지켜보는 국민은 한숨만 나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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