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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단편소설집 낸 김연수 "아주 비관적일 때 비로소 낙관주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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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단편소설집 낸 김연수 "아주 비관적일 때 비로소 낙관주의가..."

입력
2022.10.28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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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 인터뷰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확장된 시간 개념과 이야기의 힘 보여줘

김연수 작가는 이달 24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시기가 "의외로 좀 편했다"고 털어놓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야 결과물이 나오는 직업이라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류효진 기자

김연수 작가는 이달 24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시기가 "의외로 좀 편했다"고 털어놓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야 결과물이 나오는 직업이라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류효진 기자

'미래를 기억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억한다는 건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문장이다. 하지만 김연수 소설 세계에서는 오류가 아니다. 최근 발간한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일반적 시간의 개념을 넘어서서 쓴 이야기들이 모였다. 표제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으로 선정된 '진주의 결말' 등 총 8편의 단편이다. 유한함의 비극에도 오늘의 의미를 믿는 인물들이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다. 9년 만에 소설집을 낸 김연수(52) 작가를 지난 24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 오랫동안 단편을 쓰지 않았다. 이유가 있나.

"40대에 전망이 암울했다. 부모님 상을 당하고 나서 태어나는 것이 시작이면 죽는 것이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 이야기(인생)는 비극적인데, 글쓰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단편소설을 쓰지 않았다. 전망이 암울한 얘기만 나올 것 같았다. 워낙 큰 영향을 받은 사건이라 빨리 (관련 내용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세월호 소재의 몇 편이 전부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사랑의 단상 2014'가 2014년에 쓴 글이다.)

- 다시 단편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시인 백석을 이해하면서다. 이때 시간을 보는 시야가 확 넓어졌다. (2020년 출간한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은 백석을 주제로 삼았다.) 소설 집필을 끝낼 때쯤 (이념적 글을 강요하는 북한 정권 아래에서) 그가 절필하고 축산 노동을 해야 하는 양강도 삼수군으로 간 선택을 이해하게 됐다. 백석이 숨을 거둬도 그의 시를 통해 백석의 삶은 끝나지 않고 계속될 수 있다는 것도. 종말론까지 언급되는 코로나19 시대가 (비슷한 시기에) 왔고, 내가 다른 전망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단편을 쓰기 시작했다."

신간을 낸 후 전국 곳곳에서 독자와 만나는 시간을 갖고 있는 김연수 작가는 "독자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낭독하는 시간이 좋다"고 말했다. 다만 "신입생들 앞에서 '네 꿈을 키워라'라고 말하는 식의 강연은 괴로워서 이제 못하겠다"며 웃었다. 류효진 기자

신간을 낸 후 전국 곳곳에서 독자와 만나는 시간을 갖고 있는 김연수 작가는 "독자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낭독하는 시간이 좋다"고 말했다. 다만 "신입생들 앞에서 '네 꿈을 키워라'라고 말하는 식의 강연은 괴로워서 이제 못하겠다"며 웃었다. 류효진 기자

- '시간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답이 인상적이다. 수록작 중 '이토록 평범한 미래'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에 나오는 미래를 기억하는 일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가 그 소설('일곱 해의 마지막')에 담지 못한 자투리 얘기로 만든 것이다. 역사서에 쓰면 끔찍한 소재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할아버지'의 깨달음을 좇아가며 써서 그렇다. 그때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가장 최근에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쓰게 됐다."

소설 속 '할아버지'는 1949년 막내 여동생이 북한 정치보위부원들에게 억울하게 피살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철학가인 그는 "우리가 육체로 팔십 년을 산다면, 정신으로는 과거로 팔십 년, 미래로 팔십 년을 더 살 수 있다네. 이백사십 년을 경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미래를 낙관할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말한다.

- 소설집 전반에서 밝음, 낙관 등을 느꼈다.

"'지금 참으면 좋은 미래가 올 거야'라는 식의 무책임한 낙관주의로 설명될까 봐 걱정했다. 나는 굉장히 비관적이다. 세계에는 악이 존재하고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협력해 조금씩 해결해 나가야 하고 대화해야 한다. 현재가 중요하다. 이런 태도를 가지려면 (상상한) 미래가 필요하다. 아주 비관적일 때 (나아진 미래를 믿어 버리는 방법밖에 없는) 비로소 '낙관주의자'가 된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김연수 지음·문학동네 발행·276쪽·1만4,000원

이토록 평범한 미래·김연수 지음·문학동네 발행·276쪽·1만4,000원

- '진주의 결말'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소설의 가장 큰 기능이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람 간의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 만들어진다. 그 속에 들어가려면 기본적으로 자기 방어막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한다. 내가 50대 남자로서 30대 기자를 이해하려고 하면 결국 훈계하게 될 거다.(웃음) 문학은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경험을 줌으로써 그 방어막을 푸는 연습을 시켜준다."

- 문학의 입지가 축소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1990년대 등단 당시에도 이미 여의도로 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방송, 시나리오 작가를 하면 돈을 더 잘 번다고들 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읽던 작품을 쓴 폴 오스터,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들은 그 후로도 계속 쓰고 있다. 미래에 문학이 끝날 거라고 전망하면 지금 한 자도 쓸 수 없다. 나는 문학을 선택하고 싶다. 시대를 못 보는 게 아니라 내 미래를 선택한 거다."

- 다음 장편소설은 언제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가톨릭 사제를 만난 조선인 형제 이야기를 10년째 쓰고 있다. 이제야 그들의 삶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후년쯤에는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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