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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만나고 온 중학생 딸을 다그친 날, 의사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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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만나고 온 중학생 딸을 다그친 날, 의사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입력
2022.10.25 18:16
수정
2022.10.25 18:2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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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 오운문화재단, 최경숙씨에 우정선행상 수여
의료봉사 45년… 소록도 주민 마음까지 보살펴

25일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에서 열린 우정선행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최경숙 동서산부인과 원장. 코오롱그룹 제공

25일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에서 열린 우정선행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최경숙 동서산부인과 원장. 코오롱그룹 제공


1993년 6월, 중학생 딸을 한센인들이 모여 살던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보낸 건 엄마였다. 명문 예술중에 입학시켰지만, 피아노에 흥미를 잃어가던 딸이 새로운 힘을 얻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엄마는 바람 쐴 겸, 봉사할 겸 다니던 교회 목사님을 따라 소록도로 향하던 딸에게 의료 장갑과 소독약을 챙겨 보냈다. 한센인들보다, 딸 위생이 먼저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돌아온 딸의 가방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장갑과 소독약이 그대로 있었다. "장갑 끼고 만지라고 했잖니." 장갑을 꺼내지 않은 까닭을 따지듯 묻자, 중학생 딸은 의연히 답했다.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런 거(장갑) 끼고 그분들(한센인)을 만지는 걸." 그 순간 엄마는 부끄러움이 치솟았다. 의사라는 사람이, 딸 걱정한다고 환우를 배려하지 못한 탓이다. 딸의 말 한마디에, 되레 의사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셈이다.

엄마는 두 달 뒤 '딸은 어떤 사람들을 보고 온 건지'라는 궁금증을 안고 소아과 전문의 남편과 소록도로 향했고, 돌아오는 길엔 '버려진 천사들이 여기 있었구나'라는 답을 얻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남편, 지인들과 함께 '소록밀알회'를 꾸려 정기 봉사를 다짐했다. 1년에 두 번씩은 꼭 오겠다는 약속을 지켜낸 지 어느덧 30년째를 맞은 최경숙(73) 동서산부인과 원장 이야기다.

최 원장은 25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소록도 주민들을 만난 날은, 또 다른 나를 만난 날"이라고 했다. 그는 "의료 봉사 활동에 기폭제가 된 전환점은 내게 찾아온 암 선고"라며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은 1999년, 나에게 삶의 의지를 심어준 이는 소록도에서 돌보며 친해졌던 한센인 할아버지였다"고 했다. 전화기로 넘어온 "괜찮을 거야, 최 박사. 우리가 기도할게"라는 위로와 응원에 힘을 냈다고 한다. 그 뒤로 최 원장은 수술과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모두 마치고 기적처럼 건강을 되찾았다.

소록밀알회를 꾸리기 한참 전인 1976년부터 경기 시흥시 등을 찾아 의료 봉사를 해 왔던 최 원장은 이후 한센인들에 대한 관심이 더 커져 필리핀, 인도, 스리랑카 등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아프리카 한센인들을 대상으로도 봉사 활동을 이어갔다. 2002년에는 소외 지역 주민과 외국인 노동자들, 2004년부터는 노숙인들과 쪽방촌 주민들을 대상으로도 의료 봉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코오롱그룹 오운문화재단은 그런 최 원장에게 제22회 우정선행상 대상을 수여했다. 이날 서울 강서구 코오롱 원앤온리 타워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최 원장은 "유방암 완치 후부터 내 인상은 '덤'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우정선행상 본상에는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매일 희망급식소를 운영해 온 '나눔의 둥지',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해 검정고시 교육 등 무료 교육 봉사를 이어 온 '청소년 자유학교', 19년 동안 장애인들을 위한 국악 교육 활동을 펼쳐 온 한홍수(50)씨가 뽑혔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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