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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중 삭발쇼, 인터뷰엔 묵비권...악동의 '저세상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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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중 삭발쇼, 인터뷰엔 묵비권...악동의 '저세상 퍼포먼스'

입력
2022.10.25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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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뮤 이찬혁 솔로 앨범 '에러' 내고 이색 퍼포먼스

가수 이찬혁이 23일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서 삭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SBS 방송 캡처

가수 이찬혁이 23일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서 삭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SBS 방송 캡처

“우리 찬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고 싶은 거 이제 그만해” “어떻게 기행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가수 이찬혁의 기상천외한 이색 퍼포먼스가 연일 화제다. 행위예술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난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기행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던 팬들도 당황하는 분위기다.

이찬혁의 기이하고 엉뚱한 행보는 동생 이수현과 함께 하는 ‘악뮤’에서 잠시 벗어나 발표한 첫 솔로 앨범 ‘에러’ 공개를 앞두고 본격화했다.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에러’ 발매 닷새를 앞둔 12일 소셜미디어에 ‘이찬혁을 찾습니다. 목격담을 기다립니다’라는 글을 올려 앨범의 첫 곡 제목이기도 한 ‘목격담’ 이벤트를 열었다. 이찬혁은 그에 맞춰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전국 곳곳에서 출몰했다.

이달 초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 길거리에선 잠옷을 입은 채 소파에서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시는 등의 퍼포먼스를 펼쳤고, 지난달 17일 경기 하남에서 진행된 KBS ‘전국노래자랑’에선 무표정한 얼굴로 객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앨범 발매와 함께 처음 출연한 방송도 음악 프로그램이 아닌 EBS ‘딩동댕 유치원’이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 다섯 차례나 출연해 인형들과 노래했다. 물론 앨범에 담긴 노래가 아닌 ‘배가 고플 때 김밥이 좋아’라고 노래하는 ‘김밥송’ 같은 곡이었다.

지난달 17일 경기 하남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 관객으로 참여한 이찬혁. KBS 방송 캡처

지난달 17일 경기 하남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 관객으로 참여한 이찬혁. KBS 방송 캡처

기묘한 버스킹도 화제를 모았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투명 유리 부스에 들어가 신곡 ‘파노라마’를 노래하는 방식으로 서울 경의선 책거리와 전주 한옥마을, 부산 서면 등에 기습 출몰했다. 음악 프로그램에선 한술 더 떠 진행자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객석을 등지고 노래하는 독특한 연출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급기야 23일 방송된 SBS ‘인기가요’에선 이발사를 대동해 머리를 자르며 노래하는 ‘삭발쇼’까지 펼쳤다.

이찬혁의 ‘저 세상 퍼포먼스’ 행보는 대부분 스스로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YG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모든 아이디어는 이찬혁이 낸 것”이라며 “회사는 그저 도울 뿐”이라고 했다. 이찬혁은 22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K-909’에 출연해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 거냐고 묻는데 틀을 부수는 것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했다”고 말했다.

가수 이찬혁이 17일 방송된 EBS ‘딩동댕 유치원’에 출연해 인형들과 노래하고 있다. EBS 방송 캡처

가수 이찬혁이 17일 방송된 EBS ‘딩동댕 유치원’에 출연해 인형들과 노래하고 있다. EBS 방송 캡처

지난 17일 ‘에러’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자신이 “청개구리라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정해진 기준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인데 그게 또 기준이 되면 그 반대의 것을 하기 위한 퍼포먼스를 할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찬혁의 솔로 데뷔작 ‘에러’는 ‘죽음’을 주제로 11곡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콘셉트 앨범이다. 자신의 교통사고에 대한 목격담을 노래한 ‘목격담’에서 시작해 의식을 잃은 채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의 마음을 담은 ‘사이렌’, 병원에서 자신이 사망선고를 받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파노라마’ 등을 거쳐 자신의 장례식을 지켜보는 내용의 마지막 곡 ‘장례희망’까지, 20대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악뮤 이찬혁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지난해 악뮤로 발표한 앨범 ‘넥스트 에피소드’ 수록곡 ‘벤치’에서 모든 걸 잃고 벤치에서 살아도 사랑과 자유만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 노래했던 것이 이번 앨범의 단초가 됐다. 그는 이 곡에 대해 ‘당장 내가 죽게 된다면 여전히 그것들을 최대 가치로 생각할 것인가’ 하는 의문에서 가사를 써내려 갔다고 설명했다.

이찬혁의 이색 퍼포먼스는 맥락 없는 기행처럼 보이지만 앨범 콘셉트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유리 부스는 앨범의 화자가 죽은 채 누워 있는 관을 연상시키고, 침묵과 삭발은 앨범의 주제인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가수 이찬혁이 서울 경의선 책거리에서 버스킹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소셜미디어 캡처

가수 이찬혁이 서울 경의선 책거리에서 버스킹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소셜미디어 캡처

이색 퍼포먼스와 별개로 앨범에 대한 반응은 팬들이나 평단이나 대체로 긍정적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죽음이라는 주제의 무게감을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덜어내려 하는 듯한데 음악 자체만 보면 1980, 1990년대 팝 음악을 연상시킬 만큼 고전적”이라면서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솔로로나 악뮤로나 여러모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평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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