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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영묘에서 쫓겨난 스탈린

입력
2022.10.3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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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스탈린 묘 이장

모스크바 '크렘린 월 국립묘지(Kremlin Wall Necropolis)의 스탈린 무덤.

모스크바 '크렘린 월 국립묘지(Kremlin Wall Necropolis)의 스탈린 무덤.

1961년 10월 소비에트 제22차 당대회장. 레닌의 혁명 동지였던 원로 볼셰비키 도라 라주르키나(Dora A. Lazurkina, 1884~1974)가 마이크를 켰다. “동지들이여, 나는 레닌을 가슴속에 품고 가장 힘든 시절에도 살아남았고, 지금도 내가 할 일을 그와 항상 상의한다. 어제도 나는 그와 상의했다. 레닌은 마치 살아 있는 듯 내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당에 그렇게 심각한 해악을 끼친 스탈린이 내 곁에 있는 게 영 못 마땅하다’고.”

물론 ‘각본’에 따른 발언이었다. 그의 발언에 화답하듯 서기장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시신 이장을 선언했고, 10월 31일 모스크바 붉은광장 레닌 영묘에 안치됐던 스탈린 시신은 인근의 ‘크렘린 월 국립묘지’로 이장됐다. 아무런 의례도 없었고, 몇 주 뒤 놓인 화강암 비석에는 ‘J.V. STALIN, 1879-1953’이란 문구만 새겨졌다. 스탈린의 작은 흉상이나마 놓인 것은 9년 뒤인 1970년이었다.

1953년 3월 뇌출혈로 숨진 스탈린의 장례는 당연히 성대했다. 시신은 단기 방부 처리돼 국가두마 중앙홀에 안치됐고, 참배객 수십만 명이 일시에 몰려 약 500명이 압사당하는 참변을 낳기도 했다. 장례식 후 스탈린 시신은 별도의 영구 방부 처리를 거쳐 그해 11월 영묘의 레닌 시신 곁 유리관 속에 안치됐다.

레닌에 이어 만 30년간(1922~52) 소비에트 서기장을 지내며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스탈린은 혁명 영웅, 전쟁 영웅이란 찬사와 함께 ‘조지아의 인간 백정’이라 불렸다. ‘홀로도모르(holodomor, 기아 대학살)’라고도 하는 1932~33년 대기근과 식량 수탈로 우크라이나인 수백만 명을 희생시킨 것을 빼고도, 그는 대대적인 숙청과 수용소 강제이주 등으로 최소 100만여 명을 희생시켰고, 당과 관료집단을 동원해 자신을 우상화했다.

1956년 2월 20차 당대회에서 신임 서기장 흐루쇼프는 이른바 ‘흐루쇼프 비밀연설’로 스탈린의 실정을 맹렬히 비판했고, 1958년 스탈린 격하, 반우상화를 본격화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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