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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거지, 벼락부자의 세상에서

입력
2022.10.2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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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 18일 서울의 한 은행에 붙은 대출 광고. 연합뉴스

지난 18일 서울의 한 은행에 붙은 대출 광고. 연합뉴스

누구에게나 세상 물정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개인적으로 전셋집 재계약을 앞둔 2016년이 그런 해였다. 신혼집이었는데, 그 집을 계약할 당시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3,000만 원밖에 나지 않았다. 2년 사이 집값은 7,000만 원 넘게 올랐다. 그 집을 매매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전세를 줬던 집주인은 3,000만 원으로 2년 만에 투자금의 2배 이상을 번 셈이었다. 집주인은 전세를 재계약하는 대신, 집을 팔기로 했고 새 집주인은 그 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했다. 꼼짝없이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게 '갭투자'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 다들 이렇게 돈을 버는구나!' 집값 중 집주인보다 세입자인 내 돈의 비중이 훨씬 높고, 꼬박꼬박 전세자금 대출 이자를 낸 것도 나인데,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는 자본주의의 부조리함이란! 호구가 된 것 같은 억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몇 년 뒤 '영끌'을 해서 집을 샀다.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던 때다. 대출금을 갚느라 허리가 휘어도 괜찮았다. 손에 쥐는 돈이 없음에도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조차 오래가지 않았다. 2022년, 대출 금리가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고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더 오르기 전에 샀다는 안도감이 늘어날 이자 부담의 불안감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투자도 불패의 신화란 없다. 나를 향해 활짝 웃는 듯했던 행운의 신이 언제 돌변해 '옜다, 이번엔 네 차례다' 하며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알면서도 가만 있을 수 없었던 건 불안해서다. 자본주의를 떠받들고 있는 부동산, 주식, 코인은 공포를 동력으로 굴러간다. 산 입에 거미줄 칠 수 있다는 절대적인 가난에 대한 불안이 아니다. 손 놓고 있다가는 상대적으로 가난해질 수 있다, 상대적으로 돈을 벌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이 도태의 두려움을 떨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집 공간 사람'이라는 코너를 맡아 지난 6월까지 1년간, 전국 25곳의 단독주택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집주인들은 시기적으로 부동산, 즉 아파트 가격 폭등 시기에 단독주택 짓기를 선택한 이들이었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가격이 잘 오르지 않고, 팔기도 어렵다. 그래서 거의 매 인터뷰에서 물었다. "그 돈으로 아파트를 살 수도 있었을 텐데요?" 우문이었다. 대답은 대개 허무할 만큼 간명했다. '아파트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나에게 집은 자산이었고, 그들에게 집은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그 전까지는 집을 짓기 위해선 넉넉한 자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벼락거지-벼락부자'의 시대 질서에서 탈주할 의지였다. 남들이 좇는 가짜 욕망에 휘둘리는 대신 자신의 진짜 욕망을 알아차리는 현명함이었다. 몇 년 사이 폭등장과 폭락장 사이를 요동치는 한국의 자본시장을 바라보며 상상해본다. 우리가 이 벼락거지의 불안함으로부터 해방되는 방법을. '티끌 모아 태산' 대신 '티끌 모아 티끌'이라는 자조가 판치는 세계에서 벗어나는 날을. 아마도 그때는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있나요?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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