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의식·강간 통념 강할수록 무죄 판단 상승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교육 필요성 제기
'성범죄 피해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강하고 성차별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일수록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으로 참여했을 때 성범죄 피고인에게 무죄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배심원이 남성일 때, 피의자에 대한 선처 탄원서가 제출됐을 때도 피고인에게 무죄 판단을 내리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학계에 따르면,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박사과정 황규진·박우현씨는 한국여성 정책연구원이 발행하는 여성연구 9월 호에 실린 '성범죄사건 양형판단에서 배심원 특성과 피고인 요인 조절효과' 논문을 통해 이 같은 분석을 내놨다. 교신저자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다.
연구진은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으로 선정될 수 있는 만 20세~69세 351명을 대상으로 준강간 사건에 대한 시나리오를 읽고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준강간은 피해자가 술이나 약물 등으로 인해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벌어진 성폭행을 뜻한다. 연구진은 참여자들이 연구 목적을 파악하고 실제 생각과 다른 응답을 하지 않도록, '성 인식에 관한 연구'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안내했다.
분석 결과 △성차별 의식 △강간 통념 수용도 △피고인 측 탄원서의 유무는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 양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차별 의식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부터 '매우 그렇다'까지 7개의 척도를 둔 24개의 문항(한국형 다면성별의식검사)을 두고 점수를 합산해서 구했다. 점수가 높을수록 성차별 의식이 강한데, 1만큼 성차별 의식이 강하면 성범죄에 무죄 판단을 할 가능성은 1.02배 커졌다.
강간 통념 수용도는 '술에 취한 채 당했다면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 '노출된 옷을 입은 여성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등 강간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22개 문항·5개 척도('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부터 '전적으로 동의한다'까지)로 측정했다. 강간 통념 수용도가 1만큼 높을수록, 성범죄에 무죄 판단을 할 가능성은 1.04배 커졌다.
또 피고인 측이 선처 탄원서를 제출한 경우 연구 참여자들은 피고인에게 관대한 처벌을 내리는 경향을 보였다. 성별로 봤을 땐, 여성 참여자는 50.9%가 유죄 판단을 내린 반면 남성 참여자는 31.5%만 유죄 판단을 내렸다.
연구진은 성범죄에 대한 배심원의 편견이 양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은 "사건을 판단할 때 배제해야 할 부분 등을 다루는 배심원 사전 교육을 의무화하는 정책적 방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국회에서는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성폭력 사건 배심원에게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공판 전에 실시한다는 내용의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난해 발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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