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유 가격 1년간 71% 폭등... L당 1620원
기름보일러 쓰는 저소득 가구 "막막해요"
에너지바우처 지원 단가 올려도 역부족
“올 초 등유 200리터(L) 한 드럼이 20만 원 넘을 때도 비싸다고 다들 난리였는데, 이제 33만 원이래...”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면 광지원리에서 사는 독거노인 이춘모(74)씨는 요즘 ‘겨울나기’ 걱정에 한숨이 크게 늘었다. 기름보일러에 등유를 쓰는데, 가격이 1년 사이 71%나 폭등한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씨의 월 수입원은 생계급여 58만 원이 전부다. 등윳값으로 33만 원을 지출하면 나머지 25만 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그렇다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름값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실내 온도를 17~18도로 유지한 채 벽에 바람막이 비닐을 두르고 이불 밑 장판에도 얇은 스티로폼을 댔다. 그는 “낮에는 집 밖이 더 따뜻할 때도 많다”며 “하루 두 끼, 그것도 맨밥에 김치로 대충 때우고 있다”고 털어놨다.
등유 사용 184만 가구... 저소득층에 더 가혹
국제유가 하락에 휘발유와 경윳값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유독 등유는 폭등세가 꺾일 줄 몰라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9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L당 등유 평균 판매가는 지난해 9월 943원에서 올해 9월 1,620원으로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등유 가격 급등은 저소득층 가구에 직격탄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를 보면,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농ㆍ어촌이나 지방 소도시의 노후 주택 등 184만8,664가구가 기름보일러를 쓰고 있다.
이씨가 사는 남한산성면에도 기초수급대상 20가구가 기름보일러를 들여놨다. 102세 아버지를 모시고 남한산성면 검복리에 거주하는 임재혁(63)씨는 “아버지가 고령에 추위도 많이 타서 한 달 보름마다 500L를 채워드리는데 지난주에 82만 원을 썼다”고 말했다.
갑자기 커진 난방비 비중은 저소득 가구에 다양한 고통을 안긴다. 부실한 식사가 대표적이다. 최근 고물가까지 맞물려 이들은 하루 세 끼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씨 옆집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김정석(63)씨는 기름값 부담 탓에 건빵과 라면으로 겨우 두 끼만 때우고 있다. 김씨는 “다음 달부터 내년 3월까지 넉 달간 등유를 최소 4드럼(약 132만 원)은 사야 하는데 이렇게라도 아끼지 않으면 이번 겨울을 도저히 넘길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미 최대 감세"... 생존 문제인데 해법은?
올 들어 더욱 가중된 ‘에너지 취약계층’의 어려움에도 정부는 실질적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등유에 붙는 세금을 낮추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정부는 이미 법정 최대폭인 30%까지 깎아주고 있는 데다, 애초에 부과된 세금이 크지 않아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등유는 추가로 세금을 낮춰도 가격 안정 효과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7월 정부가 휘발유ㆍ경유에 대한 유류세 인하폭을 30%에서 37%로 확대할 때 등유만 적용 대상에서 빠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고육책으로 동절기 저소득층이 연탄, 기름 등 연료를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 단가를 올 들어 두 차례 인상했다. 원래 12만7,000원(전 가구 평균)이던 것이 현재 18만5,000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정도 인상액으로는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씨와 김씨의 경우 올겨울 1년에 한 차례 14만8,100원을 지원받는데, 등유 반 드럼(100L)도 살 수 없는 돈이다.
난방 문제는 취약계층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더 추워지기 전에 실효성을 갖춘 대응책이 나와야 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정부가 ‘할 건 다했다’는 태도로 손을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즉시 에너지 빈곤 실태를 조사해 지원 예산을 늘리고 대상을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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