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의 원·하청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강조한 정부가 '원·하청의 자발적 상생 방안 마련'을 해법으로 내놓자 노동계에서 비판이 터져나왔다. 하청업체의 교섭력이 약해 불공정 계약이 이뤄졌고, 하청노동자들이 저임금·산업재해·임금체불 등에 시달려왔던 것인데,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를 해소하지 않은 채 자율적 해결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정부의 조선업 다단계 구조 해결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정부 정책으로는 이중구조 해결 역부족... 원·하청이 노력해야"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조선업 이중구조 문제는 원·하청 노사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정부의 일방적 규제나 재정 투입만으로는 해결에 한계가 있다"면서 "원·하청이 자율적으로 상생·연대해 사회적 대화로 해법을 마련하고, 정부는 이행과 실천을 지원하는 패러다임으로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조선업의 고질적인 원·하청 이중구조 문제가 인력 유입 대신 유출을 가속화시킨다고 진단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인해 2016년 조선업 불황기 이후 원·하청 임금 격차가 커지는 등 문제가 심각해졌다. 최근 조선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하청 노동자는 원청의 50~70% 수준의 임금을 받고, 숙련공도 평균 시급이 1만1,600원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가 격렬한 파업을 벌인 것도 이 같은 이중구조의 불공정함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결국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은 '원·하청이 스스로 상생 방안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다음 달까지 주요 조선사와 협력업체, 정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원·하청 상생협의체'를 구성해 이곳에서 '원·하청 상생협력 실천협약'을 체결하게 하고, 정부는 참여 기업에 장려금·수당 등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상생협의체에서 △원·하청이 적정 기성금(공사대금) 지급 등 공정거래 질서 확립 △원청·협력업체 근로자 간 이익 공유 △직무·숙련 중심 임금체계 확산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 등을 위한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껏 알아서 협의한 결과가 이중구조 심화... 해결 의지 없는 것" 비판
노동계는 대책을 비판하고 있다. 협의체에 노동자는 빠지고 원·하청 사용자만 참여하게 되는데, 그동안 불공정 거래를 감내해 온 하청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다단계 구조를 통한 원청의 불공정거래와 착취가 노동자 고통의 근본 원인인데, 원·하청 사용자가 상생협약을 자체적으로 만들라는 것은 원청의 불법과 횡포를 바로잡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면서 "또 노동조합은 (내년 말) 협약 결과가 나온 뒤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발상이 황당하다"고 했다. 김기동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도 "하청은 독자적인 기술도 없고, 좋게 봐도 인력 파견 업체 수준이라 교섭력이 없어 이중구조가 심화된 것인데 (협의체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협약의 이행력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조선업 사용자 집단과 노동자 집단이 법적 구속력, 강제력을 갖춘 협약을 이끌어 내야 지속적인 이행이 가능하다"면서 "(조선업 문제가 불거진) 지금이야 원청이 눈치보며 협의체에 참여한다고 하겠지만, (장기적) 실행력이 담보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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