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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얘기 인사처럼 하는 세상" 정서경이 김고은에 20억을 메게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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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얘기 인사처럼 하는 세상" 정서경이 김고은에 20억을 메게 한 이유

입력
2022.10.19 18:00
수정
2022.10.19 20:26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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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정서경 작가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 중 첫째인 인주. 작가는 20억 원을 대형 등산용 배낭에 넣고 메고 다니도록 설정했다. 정서경 작가는 "돈을 어깨에 얹고 다닐 때 기쁨, 부담감, 두려움, 희망을 동시에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tvN 유튜브 캡처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 중 첫째인 인주. 작가는 20억 원을 대형 등산용 배낭에 넣고 메고 다니도록 설정했다. 정서경 작가는 "돈을 어깨에 얹고 다닐 때 기쁨, 부담감, 두려움, 희망을 동시에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tvN 유튜브 캡처

오인주(김고은)는 죽은 직장 동료 화영(추자현)이 남긴 돈 20억 원을 대형 등산용 배낭에 넣고 짊어진다. 자기 어깨 위로 한 뼘가량 올라온 크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휘청휘청 걷는 모습이 위태롭다.

돈 넣은 가방이 트렁크가 아닌 배낭이었던 건 작가의 설정이다. 1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서경(47) 작가는 "(인주가 돈이 생기면 사고 싶어했던) 아파트를 꼭 어깨에 얹어주고 싶었다"며 "그 돈을 어깨에 얹고 다닐 때 기쁨, 부담감, 두려움, 희망을 동시에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서경 작가는 지난 17일 진행된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종영 인터뷰에서 "이번 드라마에서 가장 욕심냈던 것은 속도감이었다"며 "차에 탔을 때 목이 꺾이는 것 같은, 12부작 내내 그렇게 달리는 드라마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tvN 제공

정서경 작가는 지난 17일 진행된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종영 인터뷰에서 "이번 드라마에서 가장 욕심냈던 것은 속도감이었다"며 "차에 탔을 때 목이 꺾이는 것 같은, 12부작 내내 그렇게 달리는 드라마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tvN 제공

지난 9일 종영한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돈에 대한 이야기다. 정 작가는 구체적으로 "700억 원이라는 돈의 생애를 단계마다 꼼꼼하게 밟아보고자 했다"고 전했다. 드라마 속에는 "돈은 물거품 같아서 사람을 불안하게 하죠", "자본주의는 심리게임이거든? 잃을 수 있어야지만 더 큰돈을 만질 수 있어. 더 많이 리스크를 거는 사람이 이기는 거니까"처럼 자본주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대사로 가득하다. 작가가 전작에서 다룬 적이 없었던 주제다.

"작업실에서 혼자 일하는 편인데 그러다가 밖으로 나오면 사람들이 다 돈 얘기를 하는 느낌이었어요. 주식, 코인 이야기를 인사처럼 하는 것을 보면서 낯설었어요. 저는 옛날 사람이라 돈에 관해 얘기하는 게 편하지 않은데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저도 그런 느낌을 따라잡고 싶었다고 할까요? 이런 사회 분위기에는 무언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 중 둘째 인경. tvN 제공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 중 둘째 인경. tvN 제공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 중 막내 인혜. tvN 제공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 중 막내 인혜. tvN 제공

세 자매는 돈 앞에서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인다. 세 자매라는 설정 자체가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에 대한 은유다. 정 작가는 "인주는 평범한 사람, 인경은 합리적인 이성, 인혜는 예술가의 영혼을 가리킨다"고 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센스 앤 센서빌리티'처럼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 주로 세 자매나 세 형제가 등장하는 건 인간 마음의 세 부분을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한 사람 안에서 싸우기도 하고, 연합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 작가가 3회에서 인주와 인경이 돈을 두고 대립하는 장면을 "'작은 아씨들'의 근간을 형성하는 신"으로 꼽는 이유다. 이 장면에서 인주는 "돈이 없으면 죽는다"며 '검은돈'을 써버리고 감옥에 가겠다고 하고, 인경은 "가난해서 도둑이 되는 건 싫어. 그건 지는 거잖아"라고 맞선다.

푸른 난초라는 장치는 지독히 현실적인 극에 환상성과 서스펜스를 더한다. '셜록홈즈' 시리즈의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오렌지 씨앗은 소설에서 살인을 예고하는 징표다. "말라 빠진 오렌지 씨앗이 불러일으키는 공포감"처럼 푸른 난초가 아름답지만 무섭기를 바랐다.

정서경 작가는 지난 17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인주와 인경이 '검은돈'을 가지고 대립하는 장면(3회)을 "'작은 아씨들'의 근간을 형성하는 신"으로 꼽았다. tvN 제공

정서경 작가는 지난 17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인주와 인경이 '검은돈'을 가지고 대립하는 장면(3회)을 "'작은 아씨들'의 근간을 형성하는 신"으로 꼽았다. tvN 제공

그는 박찬욱 감독과 '헤어질 결심'을 포함해 '아가씨', '박쥐', '친절한 금자씨' 등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함께 썼다. 드라마는 tvN의 '마더(2018)'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3~5%의 시청률로 고전했던 첫 드라마와 달리 '작은 아씨들'은 상승세를 타며 마지막 12회에서 두 자릿수 시청률(11.1%)을 기록했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시청자의 반응이 즉각적이다. 그는 "초반부 가난에 대한 묘사들이 좀 올드하고 낭만적이라는 지적이 뼈 아팠다"고 말했다. "한국군 1명이 베트콩 20명을 죽였다"와 같은 대사로 드라마가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삭제당한 일도 언급했다. "원치 않은 전쟁을 했던 당사자로서 연대의식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이 봤을 때 얼마나 불편할 수 있는지를 다 고려하지 못했던 게 너무 뼈 아팠다"고도 했다.

'작은 아씨들'은 이야기의 끝을 정해놓지 않은 채 집필을 시작했다. 그저 "매회마다 주인공이 조금씩,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그는 결말에 대해 "이 돈을 출발한 지점에서 가장 먼 곳으로 보내고 싶었다. 이 돈의 역사적인 부담이랄까, 이런 걸 다 떨치고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마침내, 300억 원을 손에 쥔 인주는 이 돈을 어떻게 했을까. 작가는 시청자의 상상에 맡기는 방법을 택했다. "제 생각에는 인주가 이 돈이 어떤 돈인지 알았고 사랑하는 사람도 잃을 뻔하고 목숨도 걸었는데 이제 (증여받은) 아파트 세금 내고 하고 싶은 거 해볼까, 이럴 것 같지 않거든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서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찾아냈을 수 있죠. 그런 상상을 불러일으켰으면 했어요."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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