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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추’ 조롱받는 영국 총리

입력
2022.10.17 18:00
수정
2022.10.17 19:41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여당인 보수당에서도 사퇴 움직임이 일고 있는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지난 14일 런던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기자 질문을 듣고 있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여당인 보수당에서도 사퇴 움직임이 일고 있는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지난 14일 런던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기자 질문을 듣고 있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임기는 양상추 유통기한(약 10일)밖에 남지 않았다.” 불과 40일 전, 과감한 감세 정책을 내걸고 취임한 트러스 총리에 대한 영국 언론의 차가운 평가다. 취임하자 마자 감세에 대한 우려로 영국 파운드화가 폭락했다. 트러스 총리는 재무장관을 경질하며 그 책임을 떠넘겼다. 하지만 후임 재무장관이 “트러스 총리가 결정적 실수를 했다”며 대놓고 항명하고, 여당인 보수당 내에서도 트러스 퇴진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 의회 민주주의 원조인 영국 역대 총리 중 최단 기록은 1834년의 23일간이다. 주인공은 나폴레옹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웰링턴 공작으로 이미 1828년부터 3년간 총리를 지낸 후, 1834년 정권 교체기 해외에 머물던 차기 총리가 귀국할 때까지 임시 총리 역할을 맡았다. 정식 총리 중 최단 기록은 1827년 조지 캐닝 내각의 119일간으로, 그는 건강 악화로 임기 중 사망했다. 그 기록을 78대 총리 트러스가 조만간 깨뜨릴 상황이다.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트러스 총리의 빠른 몰락은 감세 정책에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가 아니라, 지적ㆍ도덕적으로 신뢰를 못 얻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트러스 정책이 재정 적자를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겠지만, 감세 규모는 영국 국내총생산(GDP) 1% 정도로 당장 국채 금리와 환율이 요동칠 정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저소득층 고통이 커져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공공서비스 삭감을 주장하는 정치적 둔감함이 불안을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 ‘트러스의 대형 사고’를 보며, 우리 정부의 법인세 최소세율 인하 등 감세 정책에 대한 걱정도 늘고 있다. 이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영국은 정책 발표 직후 충격이 왔지만, 우리는 6월 세제개편안 발표 때 시장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며 “감세 철회 의사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우리가 영국보다 양호하다. 또 취약계층 보호 지출을 줄이려는 계획도 없다. 하지만 “세수를 줄이고 지출은 유지하겠다”는 마술 같은 약속이 지켜질지에 대한 의구심은 커지고 있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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