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영유권 갈등…미국 중재안에 합의
카나 유전은 레바논, 키리시 유전은 이스라엘
"에너지 공급처 다양화하려는 유럽에 도움"
천연가스전이 대거 분포한 앞바다의 영유권을 놓고 10년 넘게 충돌해온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해상 경계 획정에 합의했다. 앙숙인 두 나라가 가스전 개발로 경제적 이익을 거두면서 군사적 긴장이 누그러질 것이란 기대를 모은다. 러시아산 가스의 대체 수입처가 될 수도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11일(현지시간) 해양 경계선을 정하는 미국의 중재안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성명에서 "레바논의 요구가 충족됐고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도 지켰다"고 말했다.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총리도 "이스라엘의 안보를 강화하고 수십억 달러를 가져다줄 역사적 성과"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지중해 연안 가스·석유 매장지에 대해 2009년부터 서로 영유권을 주장했다. "가스전이 유엔이 인정한 이스라엘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다"(이스라엘)는 입장과 "분쟁 수역 안에 있으므로 이스라엘에 독점적 권리가 없다"(레바논)는 입장이 부딪혔다. 미국은 지난해 아모스 호치스타인 백악관 에너지 안보 보좌관을 특사로 보내 중재를 시도했다.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가스 수출을 제한하면서 중재에 더욱 힘을 쏟았다.
NYT 등의 보도에 따르면, 두 나라는 경계에 있는 가스전을 나눠 갖는 선에서 타협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이 서로 욕심낸 카리시 가스전과 카나 유전 중 일부는 이스라엘이, 카나 가스전의 대부분은 레바논이 시추할 권리를 확보했다.
경제적 이득·지역 안정·에너지 위기 완화까지
협상 타결은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다 줄 전망이다. ①무엇보다 두 나라의 무력 충돌 가능성이 다소 꺾였다. 이스라엘은 그간 영유권 분쟁 해결 여부와 상관없이 가스전 개발을 강행하겠다는 액션을 취했고,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가스전 인근에 무인기를 보내 요격해 군사적 긴장이 치솟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악연으로 얽혀 있다. 이스라엘은 1982년부터 2000년까지 레바논을 무력 점령했다. 2006년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이 레바논 민간인을 살상하는 등 전쟁을 벌였다. 현재도 두 나라는 사실상 전쟁 상태다.
②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전 세계 에너지 부족과 에너지 가격 급등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정부는 "에너지 위기 해결을 돕기 위해 유럽연합(EU)에 가스 수출을 늘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카리시 유전에는 1조4,100억~1조7,500억 세제곱피트(ft³) 규모 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③최악의 경제위기를 겪는 레바논은 시추한 가스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레바논은 국제통화기금(IMF)과 30억 달러(약 4조2,700억 원)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합의했지만, IMF가 요구한 개혁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아리엘 에즈라히 중동 에너지 외교 전문가는 "이번 합의가 레바논과 이스라엘을 넘어 세계에 미치는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며 "에너지 공급원을 다양화하려는 유럽에도 좋은 소식"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합의 이행이 담보된 것은 아니다. 헤즈볼라와의 타협에 반발하는 이스라엘 강경파가 합의를 뒤집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헤즈볼라 측은 TV 연설을 통해 "레바논 정부의 공식 입장을 따르겠다"고 일단 지지 의사를 밝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