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10월 말부터 부산·여수 등에 입항
"러시아 요트, 속초·포항 입항은 이례적"
크기 작아 레저 아닌 수송용 가능성
한동훈 "출입국 시스템 따라 원칙 처리"
"소형 요트가 동해에 자주 나타나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국내 요트업계 관계자 A씨
지난달 21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예비군 동원령을 내린 뒤 강원과 경북 동해안을 통해 러시아인들의 입국 시도가 이어지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원령 회피 차원이란 관측도 있지만, 동원령 이전에도 동해에서 요트를 이용한 러시아인들의 입국이 종종 있던 터라 단정하긴 이르다. 다만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동해로 이동하는 노선이 러시아인들의 '탈출 루트'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해상에 러시아인 23명 입국 시도
12일 법무부와 동해해양경찰청, 포항시 등에 따르면, 경북 포항 동빈마리나항에 러시아 선적 16톤급 요트가 지난 3일부터 계류 중이다. 포항신항에도 러시아에서 온 3.8톤급 요트가 정박해 있다. 두 요트에는 러시아 남성 4명이 타고 있다. 포항신항에 머물던 또 다른 러시아 요트는 지난 11일 오후 5시쯤 우리 영해를 벗어났다. 이들은 국제 선박대리점(에이전트)을 통해 입국 의사를 밝힌 뒤 포항으로 들어왔다. 지난 1일 오전에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항한 6톤급 요트가 강원 고성군 아야진 동방해역에서 발견됐다. 속초 해경은 경비정을 동원해 입국이 거부된 러시아 남성 5명을 돌려보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인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국내 입항을 시도한 러시아 요트는 4척이고 탑승자는 23명이다. 이들은 모두 남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이들 가운데 2명에게만 입국을 허용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간부회의에서 "최근 요트를 이용해 입국하려는 외국인들과 관련해 유효한 비자를 소지하지 않거나, 전자여행허가(K-ETA)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입국요건 미비를 이유로 입국을 허가하지 않은 바 있다"며 "통상의 대한민국 출입국 시스템에 따른 조처이며 향후에도 원칙대로 조처하겠다"고 말했다.
해경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법무부 등 관계기관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선박 승선원들의 인권과 안전을 고려한 세부적인 절차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트 크기 작아지고 시기도 이례적
동해상을 지나는 러시아 요트는 대부분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날씨가 추워지는 10월 말부터 많게는 수십 척의 요트가 부산이나 전남 여수 등 남해로 내려와 겨울을 지낸다는 게 요트업계 설명이다. 이들은 러시아와 우리나라 선박대리점을 통해 입국 허가에 대한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0월 초에 연료가 떨어진 러시아 요트가 여럿 발견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국제 요트업계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그간 교류가 많지 않았던 속초와 포항 항만에 러시아 요트가 나타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군 복무 경험이 있는 만 18~60세 남성 30만 명을 대상으로 내린 동원령을 피하려고 요트에 몸을 실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국내 요트업계 관계자들과 당국은 최근 속초와 포항에 들어온 선박 규모가 40~70피트(12~21m)가량으로 그동안 한국을 찾던 80~130피트(24~39m)보다 작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관광이나 레저 목적이 아닌 수송 목적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외신에 따르면, 유럽 하늘길과 육로가 막히자 해상을 통한 러시아인들의 탈출 사례가 늘고 있다. 이달 초 러시아인 2명이 동원령을 피해 배를 타고 미국 알래스카로 넘어가 망명을 신청하기도 했다.
동해안 주요 항구가 동원령을 피해 탈출한 러시아인들의 '중간 기착지'가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안호영 의원은 "러시아 탈출이 급증할 경우 한국이 경유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외교와 인권 문제를 고려한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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