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출신 프랑스 작가
대표작 '타니오스의 바위' '동방의 항구들'
"문학, 정치·경제의 부차적 요소 아냐"
"문학이 어떤 때보다 중요한 시대입니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조화롭게 살아가는 게 정상인 세계를 상상하지 못해서 생긴 문화적 문제입니다. 기술 발전 덕분에 물리적으로는 서로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고 편견에 쌓여 있습니다. 문학은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올해 제1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은 레바논 출신의 프랑스 작가 아민 말루프(73)는 문학과 문화가 결코 정치·경제의 부차적 요소가 아님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문학은 단순히 오락이 아니고, 삶의 변두리에서 하는 활동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타인(타문화권)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문학이야말로, 전쟁과 반목이 계속되는 지구촌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실용적 통로라는 의미다.
1975년 레바논 내전으로 프랑스에 귀화한 말루프는 제3세계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는 프랑스어권 작가다. 소설과 사회 비평 에세이, 오페라극 등을 쓰며 끊임없이 공존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콩쿠르상을 받은 '타니오스의 바위(1993)'는 레바논 민족의 수난의 역사와 애환이 잘 나타난다. 또 다른 대표작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1983)'은 서구와 아랍세계의 충돌(십자군 전쟁)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여줘 주목받았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단은 그의 작품들이 "상호 이해와 화합의 정신으로 인류 공동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할 세계문학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말루프는 박경리 문학이 자신과 통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이 역사에 근거하고, 또 국가의 구조적 정체성을 정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레바논 출신 사람으로서, 역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문학을 더 가깝게 느낀다고 덧붙였다.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전란에 시달린 레바논에서 나고 자라 고향의 이야기를 주로 쓰는 작가로서의 공감이다. 그의 작품은 자신의 민족이 겪어 온 반목과 분쟁, 몰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최근에는 색다른 작품을 냈다. 고대, 근현대사가 아닌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 '초대받지 않은 형제들(2020)'은 SF 장르적 요소도 엿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만약 핵전쟁 위협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보니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그때) 잊혀진 인류가 있었고, 그들이 재등장한다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한 게 이 소설의 시작점"이라고 전했다. 원하지 않는 역사,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역사를 다룬 것이다. 이 작품은 이달 한국에도 출간됐다. 한국 독자에게 한마디를 요청하자 그는 "오늘의 세상에서 문화는 굉장히 중요하고, 문화 또는 문학으로부터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거듭 말했다.
박경리 작가의 업적을 기려 2011년 제정된 박경리문학상은 세계 평화와 정의에 이바지하는 세계 문인을 대상으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수상자는 상장과 상패, 상금 1억 원을 받는다. 초대 수상자 최인훈 작가를 시작으로, 응구기 와 시옹오(케냐) 등 세계적 문호들이 수상했다. 올해는 모니카 마론(독일),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가 말루프와 함께 최종 후보에 올랐다. 말루프는 13일 시상식에 이어 17일 독자와 직접 만나는 대담회에도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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