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없는 글쓰기로 독자들을 전율시킨 아니 에르노(82)의 책들이 국내 출판 시장을 달구고 있다. 지난 6일 발표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에르노는 불륜, 낙태 등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글쓰기로 문학의 지평을 넓혀 왔다. 거침없는 삶과 문학에 독자들이 호응한 듯 국내 출간된 그의 책들이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몇 년 만의 노벨문학상 특수다.
에르노의 책들은 지난 30년간 국내에 꾸준히 소개됐다. 문학동네, 민음사, 1984북스, 열림원 등이 1988년부터 지금까지 17종의 책을 출간했다. 개방적인 프랑스에서조차 외설 논란이 터질 정도의 파격성과 가독성 있는 문장, 주요 문학상 수상 등 화제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추긴 했으나 그간 판매량은 야속했다. 대표작인 ‘단순한 열정’은 2012년 출간 이후 2만5,000권 정도 나갔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저력이 터졌다. 10일 현재 ‘단순한 열정’은 교보문고 일간 베스트셀러 2위로 껑충 뛰었고, 알라딘 5위, 예스24 11위에 올랐다. 알라딘에 따르면 지난달 에르노 책 판매량은 183권이었는데 노벨상 수상 후 14시간 만에 1,215권이 팔렸다. 알라딘 관계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후 14시간 동안 판매량이 가장 많은 작가”라며 “한글날 연휴도 있어 판매가 더 늘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에르노는 ‘체험한 것만 꾸밈없이’ 쓰는 작가다. 작품은 당혹스러울 만큼 적나라하다. ‘단순한 열정’은 작가 자신이 40대 시절 파리에 온 소련 유부남 외교관과 연애한 일을 일기처럼 써냈다. 헤어진 남성을 그리워하며 "어느 날 밤, 에이즈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그거라도 남겨 놓았는지 모른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사랑의 지독함을 느끼게 한다. 에르노는 '여성은, 문학은 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내밀한 인간 내면을 파헤치면서 사회적 통찰도 놓치지 않았다.
에르노의 다른 작품들도 이제야 알아봤냐며 베스트셀러 목록을 갱신하고 있다. 알라딘에서는 '빈 옷장'이 11위, '세월'이 13위에 올랐다. '빈 옷장'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드러낸 작품. 에르노가 스무 살 때 불법 낙태 수술을 받는 장면에서 책은 시작한다. 2019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세월’은 1941년부터 2006년까지 시대적 흐름을 여성 시각에서 조망했다. 자서전이 일반적으로 택하는 일인칭 화자가 아닌 '그녀' '우리' '사람들'로 서술하며 개인적 경험을 사회 공동의 기억으로 확장했다.
출판계는 모처럼의 노벨상 특수를 반기고 있다. 2021년 노벨상을 받은 탄자니아 난민 출신 영국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 2020년 상을 수상한 미국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은 국내 출간작이 없어 서점가가 웃지 못했다. 에르노 책을 다수 출간한 문학동네의 윤정민 해외문학팀 과장은 “품절 상태였던 에르노의 에세이 ‘칼 같은 글쓰기’도 재출간을 할 예정이고, 정혜용 번역가와의 북토크도 준비하고 있다”며 “이미 인지도가 있는 작가고 출간된 책들도 많아 노벨상을 계기로 더 많은 독자들에게 폭넓게 읽힐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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