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내 장병들 먹는 물 12% 부적합
비소·망간 등 맹독성 중금속 검출도
비소 1급 발암물질 분류… 매년 검출
군용수도 검사는 '비전문' 수의장교가
"지자체 상수도 공급 군부대 확대해야"
"생활관 각 층마다 정수기가 두 대씩 있었는데, 그 물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수돗물 냄새가 아니라 고인 물 냄새가 났거든요. 비릿했어요. 어쩔 수 없이 PX(영내 매점)에서 우리 돈으로 물을 사 먹었어요."
강원 화천군에서 군 생활을 하다 2019년 8월 전역한 조영진(가명·26)씨는 복무 중 식중독으로 고생했던 '악몽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조씨뿐 아니라 훈련에 함께 나간 장병 10여 명이 생활관 정수기 물을 마셨다가 단체로 식중독에 걸렸기 때문이다. 밤새 고열과 설사에 시달렸던 조씨와 동료들은 사단 의무대로 호송돼 진통제와 짜먹는 설사약을 처방받아야 했다.
전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물 냄새 때문에 정수기 업체를 매주 불러 필터를 교환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부대에 상수도가 연결되지 않아 지하수를 끌어다 식수로 썼는데, 지하수 자체가 오염됐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조씨는 "2018년 5월부터는 지하수가 고갈돼 정수기마저 쓸 일이 없게 돼 전역할 때까지 물을 사 먹었다"며 "(화천군 중심지역과 가까운) 우리 부대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고, 외진 곳일수록 사정은 더 좋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부대에서 먹는 물 수질 12.5% 부적합
병장 월급 100만 원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지만, 군인들이 부대에서 마시는 물(군용수도)은 수준 이하로 나타났다. 먹는 물 수질검사 결과 10곳 중 1곳은 먹으면 안 되는 물이었고 비소나 망간 등 중금속이 검출되기도 했다. 군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먹는 물 공급에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지만, 부대 내에선 별문제가 아닌 듯 쉬쉬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11일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군용수도 752건을 검사한 결과 적합 658건(87.5%), 부적합 94건(12.5%)으로 나타났다. 부적합은 물에 일반세균이나 총대장균군 등이 발견됐거나, 색과 냄새 등이 이상해 마시면 안 된다는 의미다. 군용수도는 지하수나 계곡수 등을 모아 저장한 뒤 염소 처리 등을 거쳐 군 자체적으로 보급한 식수를 말한다. 군용수도 부적합 비율은 2017년 5.9%, 2018년 7.0%, 2019년 6.3%, 2020년 6.9%, 2021년 6.7%를 기록했으며, 올해 들어선 부적합 비율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17년부터 맹독성 중금속 비소 검출
군용수도에선 맹독성 중금속까지 나왔다. 장병 대부분이 복무하는 육군의 경우 2017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비소가 34건이나 검출됐고, 망간도 9건 나왔다.
망간은 체내에 과흡수되면 일시적으로 신경장애 등을 일으키고, 비소는 미국독성학회에서 '독의 왕'(King of Poison)으로 규정할 정도로 맹독성 중금속으로 분류된다. 비소는 피부암과 폐암, 방광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이다. 비소는 농약이나 반도체 공장 등에서 배출되거나 지질 특성에 따라 지하수에 녹아드는데, 국방부는 지질에 포함된 비소가 지하수에 침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승일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망간은 우리 몸에 필요한 미네랄 성분으로 과다섭취하면 불편한 정도지만, 비소는 차원이 다른 중금속”이라며 “통상의 여과 장치로는 제거가 안 되기 때문에, 비소가 나온 지하수는 폐쇄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수도 61가지 vs 군용수도는 14가지 수질검사
수질검사로 드러난 문제가 빙산의 일각이란 지적도 있다. 군에서 실시하는 수질검사 자체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군용수도의 검사 주기는 일반 상수도에 비해 길고 검사 항목도 적다. 일반 상수도는 매달 61개 항목을 검사하는 게 원칙이지만, 군용수도는 분기마다 14가지 항목(간이 검사)만 검사한다. 일반 상수도와 같은 61개 항목 검사는 1년에 한 차례만 실시되며, 이때 비소가 검출되고 있다. 검사 항목과 횟수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수질 전문가가 없어 수의장교가 검사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국방부는 수의장교가 감염병 질환과 식품 관련 검사를 하고 있어 별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부대가 크고 군용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진 육군에선 화학분석 공무원이 검사할 때도 있지만, 수질검사는 대체로 수의장교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며 “군의관과 간호장교는 업무가 많아 검사를 책임지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일반 상수도처럼 매달 61개 항목 검사를 원칙으로 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유해 물질이 검출될 가능성이 있다”며 “일반 상수도를 시급히 군부대로 확대하거나 소규모 정수시설을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 군용수도를 이 상태로 두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도 나름의 대책은 세우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환경부 등과 ‘군 상수도시설 및 환경관리 개선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상수도 사업자인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해 군부대의 상수도 공급을 확대하고, 오염된 지하수가 나오는 심정을 폐쇄한 뒤 새로운 지하수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위해 올해 예산 777억 원을 편성했다.
국방부, 수돗물 군부대 공급 확대?… 현장에선 '글쎄'
그러나 국방부 설명과 달리, 전방 군부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두 차례 연속 군용수도 부적합 판정을 받은 7사단과 15사단, 27사단이 자리 잡은 강원 화천군 상하수도사업소를 지난 5일 찾았지만, 수돗물 공급을 위한 국방부 지원 방안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었다. 화천군에서 수돗물이 공급되는 부대는 30% 수준으로 지하수(관정 개발)가 50%, 계곡수 사용이 20% 정도다. 화천군은 수돗물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고 군부대에 수도관이 연결돼 있지 않아 지자체 예산으로 부대에 수돗물 공급을 확대하는 건 어렵다는 입장이다.
화천상수도사업소 관계자는 “화천군은 주민보다 군인이 많은 지역이지만, 지자체 예산으론 주민들에게 수돗물을 보급하는 것도 빠듯하다”며 “국방부 등 정부 예산의 투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옥주 의원은 “최근 5년간 군용수도의 먹는 물 수질검사 결과 부적합 판정이 상당수 나왔는데도 국방부는 제대로 개선하지 않고 있다”며 “장병들이 군 복무 중 마음 편히 물을 마실 수 없다면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국방부는 12일 입장 자료를 내고 "장병 생활에 필수적인 식수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상수도 공급을 원칙으로 시설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며 "상수도 공급이 저조한 지역은 지자체와 협조를 더욱더 강화하고 예산을 적극 투입하는 등 군부대 상수도 공급이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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