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종업원이 자꾸 깜빡한다. 준비된 음료수 종류를 알아봐주겠다더니 감감무소식이고, 주문서는 주방에 전달되지 않는다. 경증 치매 환자인 한수, 덕철, 옥자, 승만이 서빙하는 식당은 '신속', '정확'과는 거리가 영 멀다. 하지만 이런 실수는 치매 환자가 아니라도 종종 한다.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송은이도 계산 실수를 하고, 셰프도 음식을 갖다줄 테이블 번호를 잘못 알려준다. 이를 본 81세 치매 환자 옥자는 말한다. "그럴 수도 있어, 나는 이해해."
KBS 2TV에서 지난 4일부터 앙코르방송 중인 '주문을 잊은 음식점2(6부작·화요일 오후 11시)'는 경증 치매인이 제주도에서 팝업 식당을 운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2018년 방송된 시즌1에 이은 4년 만의 시즌2다. 6월 첫 방송된 후 호평이 이어져 다시 방송을 타게 됐다. 지난 5일 KBS에서 만난 김명숙 PD는 "시즌1 출연자 분들과 연락을 계속하고 지냈는데, 코로나로 치매안심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집에만 있다 보니 상태가 더 나빠지더라"며 "치매 환자들이 코로나로 겪는 문제를 짚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다큐멘터리와 관찰 예능의 형식을 섞은 교양 프로그램이다. 치매를 다룬 교양 프로그램은 그간 많았지만 이런 시도는 처음이다. 치매를 불가항력의 공포로 다루기보다 같이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는 게 이 방송의 미덕이다.
"치매 진단을 받는 순간 대부분 격리가 돼요. 경증이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은데, 주변에 숨기고 가족끼리 갈등하다 그 중요한 시기를 다 놓쳐버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시설에 가게 되는 건 비극이라고 생각했어요. 치매를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없을까, 치매 이후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치매 환자가 낯선 사람을 자꾸 접하고 즐겁게 지내고 자신감을 가져야 증상을 늦출 수 있다고 제작진에 조언했다. 김 PD는 "이 분들이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며 "예상치 못했던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본인이 수행해야 하는 게 굉장히 다양한 공간이라 음식점을 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외부 자극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일 영업 시간은 3시간으로 한정하고, 테이블은 7개만 운영했다.
'깜빡 4인방'의 방송 후 가장 큰 변화는 이들이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촬영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이 없었어요. 방송에도 나오는데 중간중간 '나 여기 그냥 아르바이트하러 온 거야', '나는 오늘 집에 가. 나도 놀러온 사람이야'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거든요. 그런데 손님들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실수를 해도 '괜찮다'라는 피드백을 받으면서 조금씩 달라졌어요. 마지막 날에는 치매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 시작했고 계속하고 싶고, 즐거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드라마, 예능이 아닌 교양 프로그램의 포맷을 수출한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 중국과 스위스가 이미 판권을 사갔다. 시즌2는 글로벌 제작사인 A+E 네트웍스와 공동 제작했는데, 내년 중 아시아 28개국 라이프타임 채널을 통해서 방송된다. 지난달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참석차 방한한 애덤 스테인먼 워너 브러더스 부사장이 "최근 가장 몰입해서 본 한국 콘텐츠"로 콕 집어 언급하기도 했다.
방송을 보고 있으면 치매 환자의 모습에 사회의 여러 소수자를 대입하게 된다. 김 PD는 "주변에 많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이기도 한 것 같다"며 "효율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꼭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다들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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