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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꾸준한 사람이 좋다

입력
2022.10.08 00: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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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오래전 모 매체의 에디터로 일하던 때, 그곳에 가끔 글을 싣는 장년의 필자 A가 있었다. 당시 우리는 사전 섭외된 외부 필자들이 블로그나 개인 공간에 작성한 글 중 좋은 것을 고르고 다듬어 게재하곤 했는데, 그는 그 사전 섭외 필진들 중 하나였다. 미끈한 글을 뽑아내는 수십 명의 필진들 가운데서 A는 크게 눈에 띄는 인물이 아니었다. 트렌디한 소재를 잘 골라내는 편이라 올릴 때마다 주목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색다른 시선을 갖고 있거나 기술적으로 좋은 글을 쓰는 분은 아니었으므로 그의 글을 한 번 다듬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갔다. 그렇다 보니 하루에 십수 건씩 올라가는 글 중 A의 글이 포함되는 것은 한 달에 1번, 많으면 2번 남짓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A가 매체의 게재 여부나 조회수와 관계없이 꾸준히, 일정한 간격으로 글을 쓰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글 하나를 올리고 몇 달씩 감감무소식이거나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만 글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 외부 필진들 사이에서, 일주일에 5, 6편씩의 글을 과제하듯 꾸준히 올리는 A의 지구력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내 감상은 거기까지였고, 직장을 옮긴 후로는 자연스럽게 기억에서 잊혔다.

A의 이름을 다시 마주한 건 그로부터 8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인 얼마 전, 버스 안에서였다. 출근 중 별생각 없이 어느 온라인 매체에 실린 글을 읽었고, 꽤 괜찮은 글이라는 생각을 하며 스크롤을 내리다 필자명을 보고 멈칫했다. A였다. 다시 스크롤을 올려 글 전체를 정독했다. 문장도 문장이지만 글의 구성과 시선이 몰라보게 좋아져 있었다.

궁금하고도 어딘지 반가운 마음에, 연결된 링크를 눌러 그의 블로그에 접속했다. 화면이 뜨고, 글 목록을 살펴보다 무의식 중에 탄성이 터졌다. 내가 그를 잊어버리고, 당시 일했던 매체가 사라졌던 그 수년간에도 그는 이전과 다름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글을 쌓아오고 있었다. 그 결과물은 방대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목록을 넘기면서 나는 그가 이제껏 적어 왔던 어떤 글을 읽었을 때보다 깊이 감명받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어떤 일을 꾸준히 하는 것에 대해 큰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짧은 시간 내에 남들보다 뛰어난 결과를 보이는 사람들, 소위 '재능충'이나 '사기캐'로 불리는 이들을 닮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일상에서 오로지 내 의지로만 시작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그만둘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것이 그걸 잘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차츰 실감해가고 있다.

끈기가 적고 쉽게 주눅이 드는 나는 그중에서도 서툴거나 평범한 사람들의 꾸준함이 특히 좋다. 실력 향상이나 보상의 여부와 관계없이, 본디 자신이 하고 싶었던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어른다운 성숙함이 드러나는 까닭이다.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달리던 시기들이 지나고 반복적인 일상을 수행하며 삶이 몇몇 중요한 점의 군집이 아닌 연속선의 모습이라는 것을 서서히 체감하는 요즘, 나는 톡톡 튀는 사람들보다 이처럼 꾸준한 사람들로부터 앞으로의 삶을 지탱할 용기를 얻는다.

직접 전할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을 빌려 A님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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