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마약류 4년간 처방량 356만 정
매년 7,000명 안팎 의사 셀프 처방 추정
의사 A씨는 심리적 안정을 위해 2018년 1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자나팜정(알프라졸람), 스틸녹스정(졸피뎀), 트리아졸람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총 5,357정 투약했다. 날짜로 계산하면 461일 동안 매일 11.6정씩 먹은 셈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투약이 가능했던 건 '셀프 처방' 때문이다. A씨는 자신에게 이 약품들을 처방했던 것이다.
셀프 처방 의심 의사 매년 7,000~8,000명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적발한 이 사례 외에도 약 4년간 셀프 처방으로 의심되는 의료용 마약류 처방은 10만 건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불법 사용을 위한 셀프 처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아직까지 전수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다.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실이 식약처가 제출한 2018년 5월~2022년 6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처방 의사와 환자의 이름, 출생 연도가 동일한 의료용 마약류 조제·투약 내역은 10만5,601건이다.
연도별 처방은 △2018년 5~12월 1만4,167건(45만5,940정) △2019년 2만5,439건(83만8,700정) △2020년 2만6,141건(87만2,292정) △2021년 2만6,179건(87만1,442정) △올해 1~6월 1만3,675건(52만1,139정)이었다. 약 4년간 총 처방량이 356만 정에 달한다.
식약처 자료를 토대로 의료용 마약류 셀프 처방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사는 △2018년 5~12월 5,681명 △2019년 8,185명 △2020년 7,879명 △2021년 7,736명 △올해 1~6월 5,698명이다. 마약류 처방 이력이 있는 전체 의사 대비 셀프 처방 추정 의사 비율은 매년 7% 안팎이다. 최연숙 의원은 "이름과 출생 연도가 같은 동명이인이 존재하더라도 의사와 환자로 만나 일반 의약품이 아닌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이뤄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개인정보 보호에 막혀 현재까지는 '추정'
최 의원은 의사와 환자의 주민등록번호가 아닌 이름과 출생 연도로 셀프 처방 규모를 추정했다. 주민등록번호를 비교하면 명확하지만 현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은 의사면허번호만 입력하기 때문이다. 의사면허를 관리하는 보건복지부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주민등록번호 중 앞 두 자리만 제공, 식약처의 점검도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법적 근거가 없어 셀프 처방 의심만으로는 조사에 나서기 어렵고 제보나 내부 고발 등이 있을 경우 조사를 한다"고 말했다.
전수조사는 없었지만 불법 셀프 처방 가능성은 적지 않다. 식약처가 최근 2년간 마약류 처방량 상위 의료기관 42개를 점검해 수사 의뢰한 24개 기관 중 8개가 검찰에 송치됐다. 복지부가 2018년 이후 마약류 투약과 처방 등으로 행정처분을 내린 의사 61명 중 최연숙 의원실은 7명이 셀프 처방, 타인 명의 대리처방 등을 통해 직접 마약류를 투약한 사실을 확인했다.
"셀프 처방 전수조사부터"
의사들의 마약류 투약과 오남용은 진료를 받는 환자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캐나다 등 해외의 경우 의사 본인은 물론 가족에 대한 마약류 처방까지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주별로 규정이 다르지만 코네티컷주는 응급 상황을 제외하고 의사가 규제 약물을 본인이나 직계가족에게 처방 또는 투여하는 것을 금지한다. 일리노이주에서는 개업의가 규제 약물을 셀프 처방하거나 분배할 수 없고, 텍사스주는 의학협회가 셀프 처방을 금지했다.
최연숙 의원은 "의사들의 마약류 불법 투약과 오남용 사례가 반복적으로 확인되는데도 지금까지 셀프 처방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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