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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앙의 맛인가!"... 자존심 꺾은 보르도 와인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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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앙의 맛인가!"... 자존심 꺾은 보르도 와인의 '절규'

입력
2022.10.03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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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고온, 가뭄' 보르도에 닥친 기후위기
적응 위해 생산 기준 변경하는 '명품' 보르도
"이대로 가면 명성 빼앗길 수" 위기감 고조

보르도(Bordeaux) 와인.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은 프랑스를 와인 종주국으로 우뚝 세웠다. 세계 최고의 품질을 만드는 엄격한 기준은 그 자체로 이 지역의 자부심이다. 그런 보르도 와인이 흔들리고 있다. 기후 재앙 때문이다. 지역 와인 생산업자들은 생존을 위해 분투 중이다.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지역의 남쪽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로랑 르브룬씨가 8월 포도밭을 거닐며 포도를 맛보고 있다. 보르도=AP 연합뉴스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지역의 남쪽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로랑 르브룬씨가 8월 포도밭을 거닐며 포도를 맛보고 있다. 보르도=AP 연합뉴스


'깐깐한 기준' 와인 성지... "보르도가 바뀌고 있다"

보르도 지역은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수원을 자랑했다. 와인용 포도 재배에 탁월한 환경이었다. 고대 로마 때부터 널리 사랑받은 보르도 와인에 명성과 신뢰를 더한 건 '극도로 깐깐한 관리'였다. 보르도 와인은 포도 품종부터 재배, 발효, 수확 방법 등이 별도 위원회와 조합을 통해 철저하게 관리된다. 프랑스 당국이 원산지통제명칭(AOC)을 붙여 보호하는 와인 4분의 1이 보르도산이라는 점은 이를 증명한다.

보르도 와인의 아성을 지켜온 타고난 환경과 엄격한 기준의 톱니바퀴가 삐걱대고 있다. 일단 날씨가 더워졌다. 유엔의 올해 2월 발표에 따르면, 지중해 연안 지역의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올랐다. 지구 전체 평균(1.1도 상승)보다 가파른 상승이다. 고온은 알코올 함유량을 높이고 산도를 낮추는 등 와인의 균형을 깬다. 올해 보르도 지역의 기온은 여름 이전인 6월부터 40도를 웃돌았다.

산발적인 기후 이상도 잇따랐다. 초여름에는 우박이 덮쳤고, 그 이후로는 역대급 가뭄과 산불로 신음했다. 보르도의 한 와인생산업체에서 관리책임자로 일하는 존 미트라씨는 한국일보에 "올해 여름 3개월 동안 비는 거의 오지 않았고, 기온은 35~40도였다"며 "좋은 포도를 얻기가 힘들어졌단 뜻"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보르도의 외곽 지역에서 발생한 불을 끄기 위해 9월 12일(현지시간) 소방관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보르도=AFP 연합뉴스

프랑스 보르도의 외곽 지역에서 발생한 불을 끄기 위해 9월 12일(현지시간) 소방관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보르도=AFP 연합뉴스

어쩔 수 없이 생산∙관리 방식을 건드려야 했다. 당장 수확 시기가 조정됐다. 보르도 와인 중 최고 등급으로 분류되는 '샤토 셰발 블랑'의 기술이사인 피에르 올리비에 클루에씨는 "포도 수확을 8월에 시작했는데, 이는 전례 없는 일"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보르도 와인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통상적인 수확 시기를 9월로 소개한다.

생산 기준도 느슨해지고 있다. 그간 허용되지 않던 관개가 올해는 허용됐다. 약 100개 도시에 식수 공급이 끊겼을 정도로 프랑스 가뭄은 심각했다. 보르도산으로 인정되는 포도 품종도 6개 늘렸다. 고온건조한 환경에 잘 견디는 품종들이다. 예전엔 포도 열매가 햇빛을 더 많이 받도록 일부러 포도나무의 잎을 잘랐지만, 이제는 햇빛을 가릴 수 있는 큰 나무를 주변에 심는다. 햇빛이 나무를 태울 정도로 지나치게 강렬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와인전문매체 '와인애호가'는 올해 초 "수십 년간 어떤 변화도 없던 보르도 지역이 변하고 있다"고 평했다.

스페인의 부르고스 지역 한 포도밭에서 9월 8일(현지시간) 포도 수확이 한창이다. 부르고스=AFP 연합뉴스

스페인의 부르고스 지역 한 포도밭에서 9월 8일(현지시간) 포도 수확이 한창이다. 부르고스=AFP 연합뉴스


'탄 맛 날까' 고민하는 씁쓸한 현실... 인간의 미래는?

보르도 와인의 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도 잇달아 나온다. 프랑스 양조학자 연합 주최로 지난달 열린 보르도 와인 시음 행사에서 '탄 맛 여부 확인'을 위한 시음이 400번 이어졌다. '대형 산불로 와인에 탄내가 뱄을까' 우려한 탓이다. 인디펜던트 등은 '그간 와인 생산지로 적합하지 않던 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생산지로 부각하고 있다'고 최근 연이어 소개했다. 미트라씨는 "이런 기후가 계속된다면, 와인 주도권을 다른 지역에 넘겨줄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식탁의 위기'나 '산업의 위기'를 넘어선다. 기후 위기가 인류의 삶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BBC는 최근 스웨덴 와인을 소개하며 스웨덴 룬드대 지속가능과학 분야 조교수 킴벌리 니콜라스의 발언을 길게 실었다. "만약 지구가 4도 더 뜨거워지면, 스웨덴은 피노누아(비교적 더운 지역에서 자라는 포도 품종)의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구가 제대로 기능할까요. 기후 변화의 영향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입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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