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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에 한국도 히든카드?…美가 조바심 내는 전기차 배터리 업체[문지방]

입력
2022.10.03 12:46
수정
2022.10.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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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 美 공장 불허 결정
尹 방미 직전 발목 잡기, 대미 협상카드 관측
IRA 뒤통수 맞은 정부...오히려 美가 조바심
미국 측 서운함 토로...외교 2차관 방미 해명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뉴욕의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뉴욕의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That’s a big problem.(그것 참 큰 문제예요)”


외교 소식통이 전한 지난달 중순 미국 정부 관계자의 발언입니다. 당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미국에 대한 우리 정부와 여론의 불만이 한창 고조될 때입니다. IRA 때문에 뒤통수를 맞은 건 한국인데, 왜 반대로 미국 측에서 조바심을 낸 것일까요.

미국이 아쉬움을 드러낸 대상은 엘앤에프(L&F)라는 한국 업체입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소재인 양극재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곳입니다. 회사 이름이 생소할지 몰라도 주식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겁니다. 코스닥 상장기업 가운데 시가총액(3일 기준ㆍ6조3,847억 원) 3위에 올라 있는 중견기업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 업체의 미국 진출에 발목을 잡았습니다. 산업기술보호위원회에서 미국 공장 설립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겁니다. 첨단기술인 양극재 제조기술에 대한 보안조치가 미흡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반도체, 배터리 등 국가 핵심기술을 수출하거나 관련 회사가 인수합병 대상이 될 경우 산업부 장관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정부가 이례적으로 혈맹 미국을 향해 ‘한 방’ 먹인 모양새입니다. 더구나 미국이 IRA로 몽니를 부리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가뜩이나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일각에서는 “통렬하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IRA의 혜택을 받으려면 적극적으로 미국에 진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행 대열의 선두에 서 있는 업체를 정부가 일단 붙잡아둔 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환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환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실제 IRA 시행 이후 한미관계는 눈에 띄게 껄끄러워졌습니다. 주무부처인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장관, 차관을 비롯한 우리 정부 인사들이 기회가 날 때마다 미국 측에 이의를 제기하며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까요. 윤석열 대통령도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최우선 이슈로 거론하며 시정을 촉구했지요.

IRA는 기후변화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을 늘리려는 미국의 정책입니다. 문제는 미국에서 최종 생산하거나,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북미지역(캐나다, 멕시코)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ㆍ가공한 경우에만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겁니다.

노림수는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기 위한 것인데, 불똥이 한국으로 튀었습니다.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해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동맹 한국을 버렸다”, “미국 이익만 챙기려는 일방주의”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엘앤에프의 미국 진출 승인 여부는 우리 정부가 IRA에 대한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몇 안 되는 대미 협상 카드로 통했습니다. 이 업체와 합작해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던 미국 기업들의 애간장을 태울 수 있으니까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가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산업기술보호위가 불허 결정을 내린 직후 윤 대통령이 뉴욕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것을 감안하면 시점이 절묘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이 지난달 22일 미국 워싱턴을 찾아 다린 라후드 하원의원과 만나고 있다. 외교부는 이 차관이 미국 측 인사들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의견을 나눴다고 전했다. 외교부 제공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이 지난달 22일 미국 워싱턴을 찾아 다린 라후드 하원의원과 만나고 있다. 외교부는 이 차관이 미국 측 인사들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의견을 나눴다고 전했다. 외교부 제공


다만 우리 정부도 미국과 사이가 틀어지는 건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이 미국으로 향합니다. 이 차관은 커트 캠벨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과 미 의회 인사들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IRA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을 설명하면서 엘앤에프의 미국 진출과 관련된 이야기도 꺼냈다고 합니다. 미국 업체와 합작하려 했는데 보안유출에 아직은 취약해 승인해줄 수 없었다는 겁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내용이라는 점도 덧붙여 강조했다네요. 이 같은 취지로 이 차관이 그간의 경위를 설명하자 미측은 “이해하고 있다”, “상부에 잘 보고하겠다”고 답했다는 전언입니다.

정부는 IRA 폭탄을 맞은 이후 어떤 식으로든 미 측에 우리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이 무성하지만, 어쨌든 상황을 수습하고 피해를 줄이려면 끝까지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미국이 원하는 한국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과 한국이 걱정하는 IRA의 험한 파고가 앞으로 어떻게 맞물려 돌아갈지 주시하는 이유입니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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