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선수 등 안전 위협해 강경 진압" 주장
현장 동영상엔 군경의 일방적 구타와 폭력만
사용 금지된 최루탄 현장 발사가 참사 키워
축구 경기장에 난입한 인도네시아 축구팬 120여 명이 군과 경찰의 폭력 진압을 피해 달아나다 사망했다. 대부분 압사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축구팬들이 선수들을 위협해 어쩔 수 없이 강경 대응했다"고 주장했지만, 현장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 말하는 진실은 달랐다. 축구팬들의 폭력 징후가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경은 곤봉을 마구잡이로 휘둘렀고, 경기장 내 사용이 금지된 최루탄까지 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총기류나 군중 통제용 가스를 경기장에 휴대하는 것을 전면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프닝으로 그칠 사건을 군경이 참사로 키웠다고 인도네시아 축구팬들은 주장하고 있다.
"경찰관도 사망" 서포터즈 탓만 하는 경찰
2일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참사는 전날 인도네시아 동부자바주(州) 말랑의 칸주루한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레마 FC와 페르세바야 수라바야 팀의 지역 리그 경기가 끝난 직후 발생했다. 홈팀인 아레마 FC는 23년 만에 수라바야에 3대 2로 패했고, 분노한 열성 홈팀 서포터즈 수백 명이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경기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날 전체 관중은 4만여 명이었다.
군경은 즉각 진압에 나섰고, 팬들은 곤봉 세례를 피해 출입문 쪽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경찰이 선수 보호를 명목으로 출입문을 봉쇄한 상태였다. 출입문 쪽에 수백, 수천 명이 뒤엉키면서 최소 125명이 사망하고 180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엔 어린이도 포함됐고, 중상자도 많았다. 동부자바주 보건당국은 "사망자 대부분은 압사 혹은 질식사했다"고 밝혔다.
당초 사망자 수는 174명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125명으로 정정됐다. 에밀 엘레스티안토 다르닥 동부자바주 부지사는 "경찰이 병원 10곳에서 사망자 자료를 재검토한 결과, 환자 이송 과정에서 사망자 수가 중복 계산된 경우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군경은 사고 책임을 축구팬들에게 돌렸다. 니코 아핀타 동부자바주 경찰서장은 "'아레마 FC 서포터즈가 선수와 구단 관계자들의 안전을 위협해 진압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며 "경찰차 10대 등 차량 13대가 파손되고 경찰관도 2명 사망했다"고 말했다.
전시 상황? 곤봉 구타와 발차기 난무하는 진압 현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엔 참사 전말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서포터즈들이 경기장에 난입해 감독석과 선수 라커룸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진압봉과 방패로 무장한 병력 수백 명이 투입됐다. 군경은 구두 경고 없이 곤봉을 휘둘렀다. 선두에 있던 서포터즈들은 군경에 둘러싸여 구타를 당했고, 나머지 병력은 도망치는 서포터즈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놀란 서포터즈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최루탄이 발사됐다. 이는 서포터즈가 난입한 지 57초 만에 벌어진 일이다.
경기장은 지옥의 현장이 됐다. 최루탄 발사에 혼비백산한 관중들이 한꺼번에 출구로 몰리면서 압사자와 질식자가 대량 발생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말랑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SNS에 "군경이 서포터즈를 죽였다는 소문이 돌면서 시민들이 경찰차에 불을 지르며 강하게 항의했다"고 전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이날 경찰청장에게 "현장의 군경을 포함, 참사 책임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관계 부처에도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의료비와 보상금 지급을 명령했다.
이번 참사의 피해자는 1964년 페루 리마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페루와 아르헨티나의 1964 도쿄올림픽 예선 경기 참사(328명 사망·1,000여 명 부상) 이후 두 번째로 많다. 당시에도 경찰의 최루탄 발사 등 강경 진압이 피해를 키웠다. 1996년엔 과테말라와 코스타리카의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경기를 앞두고 출입구에 관중이 몰려 79명이 숨졌다. 올해 3월엔 멕시코 프로축구 1부 리그에서 양 팀 서포터즈들이 경기장까지 난입해 싸우다 10여 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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