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옐런과 통화... '유동성 공급' 재논의
美인플레감축법 우려에 '각별한 관심' 당부
“정말 달러를 못 구하는 상황이면 빌려주겠지만 아직은….”
이런 미국 재무장관의 판단에 한국 카운터파트도 이견이 없었다. 다만 좀체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이는 원화 약세가 최근 한국 경제에 부담을 줄 정도로 심해진 만큼 혹시 모를 만일의 경우를 동맹국끼리 대비해 놓을 필요는 있다는 것이 한미 경제 수장 간 공감대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 시간으로 전날 오후 8시부터 1시간여 동안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컨퍼런스콜(전화 회의)’을 통해 양국 간 경제 현안을 논의했다.
외환시장 협력과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두 가지가 핵심 의제였다. 우선 추 부총리는 “양국이 외환시장 관련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긴축적인 글로벌 금융 여건이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다.
그러나 당장 도와 달라는 뜻은 아니다. ‘유동성 공급 장치(liquidity facilities)’를 실행하기 위해 양국이 긴밀히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게 7월 재무장관 회의와 지난달 정상 회동에 이어 이번 통화 때 두 장관이 거듭 확인한 사실인데, 실행에는 단서가 있다. 주요국의 ‘유동성 경색(liquidity crunch)’ 확산에 의해 금융 불안이 심해질 경우에 한해서다. 물론 주요국에 한국이 포함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말하자면 ‘보험’을 든 셈이다.
지금 한국 처지가 보험금이 지급돼야 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게 두 장관의 공통된 평가다. 원ㆍ달러 환율이 급등하기는 했지만 한국 경제가 양호한 외환 유동성 상황, 충분한 외환 보유액 덕에 여전히 견고하고 안정적인 대외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은행끼리 달러를 조달하는 ‘외화자금시장’이 별 탈 없이 작동 중이고, 설령 달러화 구할 길이 갑자기 막혀도 한 달 보름쯤은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현재 국내 은행의 고(高)유동성 외화 자산 비율이 충분하다는 게 외환 당국 설명이다.
당장 재무부 차원에서 마땅히 활용할 만한 유동성 공급 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도 아니다. ‘통화 스와프(맞교환)’가 가장 잘 알려진 유동성 공급 장치이지만, 양국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소관인 데다, 경기 침체까지 각오하며 고강도 긴축 중인 미 연준이 결과적으로 시중 달러를 늘릴 수 있는 스와프를 달가워할 가능성이 크지도 않다.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 외부 자금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지만 7월 이후 시장 변동성이 커진 만큼 필요할 때 달러를 공급해 주겠다는 미국의 기존 약속을 재확인하고 더 탄탄하게 다져 놓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번 통화에서 추 부총리는 지난달 16일 옐런 장관에게 IRA에 대한 우려를 담은 부총리 명의 서한을 보낸 사실을 언급하며 이 법이 북미산 전기차에만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바람에 한국의 전기차 업계와 국회 등을 중심으로 우려가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각별한 관심을 가져 달라”고 추 부총리가 당부하자 옐런 장관은 “긴밀한 협력을 지속해 나가자”고 답했다고 한다.
이번 컨퍼런스콜은 이달 중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리는(워싱턴DC) 미국의 재무부가 우리 측에 요청해 성사됐다. 두 장관의 공식 대화는 올 5월 추 부총리 취임 뒤 네 번째이자 마지막 만남인 7월 19일 한미 재무장관 회의 뒤 두 달여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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