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29일 출간 기념 북토크서 소회 밝혀
"이번 시집이 준 가르침, 열심히 쓸 것"
"내 시의 수원지는 비극이라 생각해"
"시를 쓰지 않은 날을 모아 보면 15년 정도 됩니다. 시집 한 권을 쓰고 나면 1~2년씩 시를 쓰지 않곤 했어요. (돌아보니) 오만했지 않았나… 이제는 열심히 씁니다. 이번 시집이 제게 준 가르침입니다."
정호승(72) 시인이 29일 저녁 서울 마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지난 세월을 회고하며 한 말이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올해가 딱 50주년이다. '슬픔이 기쁨에게' '수선화에게' 등으로 알려진 스타 시인인 그지만 돌아보면 평화롭게 시만 썼던 삶은 아니라는 얘기다. 시작(詩作)이 고통스러워 시집 한 권을 내고 나면 다시는 시를 안 쓰겠다는 생각도 했고, 실제 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던 젊은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택배')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시절이 오만하게 느껴진다고 그는 고백했다. 스스로 시를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조차 자신을 잡아주고 끌어준 게 시였기에 "시는 내 삶의 절대적 존재"라고도 했다.
이날 북토크는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출간 기념으로 열렸다. 50여 명의 독자들은 90분 가까운 시간 동안 시인의 시 낭송에 울고 솔직한 입담에 웃었다. 이번 시집은 '당신을 찾아서' 이후 2년 만에 낸 그의 열네 번째 시집이다. 일상의 언어가 곧 시어라는 시인의 말처럼, 이번 시집도 편안한 단어가 모여 위로와 안식을 전한다. 허송세월에 대한 후회로 어느 때보다 열심히 시를 쓴다는 그의 고백이 무색하지 않게 115편 대부분이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시다.
첫 시집('슬픔이 기쁨에게')과 신작 모두 슬픔을 주어로 삼았다. 우연은 아니다. 시인은 "슬픔은 다른 말로 '비극'"이라면서 "내 시의 발화점, 수원지는 '비극'"이라고 단언했다. 정호승 시 세계의 화두는 50년간 언제나 비극(혹은 슬픔)이었던 것이다. 특히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슬픔이야말로 누구나 겪는 일이면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곧 시의 씨앗이다. 신작 표제시 '택배'의 첫 문장인 '슬픔이 택배로 왔다'를 시집 제목으로 정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릴없이 받아들 수밖에 없는 슬픔을 노래하고자 했다.
이번 시집에는 유독 '떨어질 락(落)'자를 포함한 시 제목이 많다. 시인의 죽음에 대한 사유가 더 깊어진 까닭이다.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 햇빛에 대하여 / 바람에 대하여 / 또는 인간의 눈빛에 대하여…사랑한다는 것은 /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첫 시 '낙과(落果)'를 비롯해 '낙곡(落穀)' '낙수(落水)' 등 6편의 시가 떨어지는 이미지에서 죽음과 인생을 포착하고 있다.
이날 북토크에서 시인은 "인터넷 시대에 시가 시체와 같다"며 걱정했다. 토씨 하나, 행갈이 위치 하나가 모두 중요한 게 시다. 그런데 원문의 90% 이상이 훼손된 채 인터넷상에 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는 자신의 시 '강변역에서'가 '강변옆에서'로 바뀌어 유포되는 일도 봤고, 쓴 적 없는 시 옆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경우도 수없이 맞닥뜨렸다. 온라인상의 잘못된 시구(詩句)를 새긴 판각 선물을 받은 에피소드를 말하며 시인은 웃었지만, 고통 속에 낳은 자신의 시가 난도질된 모습을 본 작가의 슬픔은 얕지 않아 보였다. "진정한 독자라면 시집을 통해 원문을 찾아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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