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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해서 비겁한 尹 측근들

입력
2022.09.29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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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김희원한국일보 논설위원

수상한 해명이 비속어 논란 더 키워
직언하는 참모와 윤핵관 아무도 없나
정치 초보 대통령 만든 책임 나눠 져야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국민이 자명하게 아실 것"이라고 답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비속어 유감 표명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말없이 돌아섰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국민이 자명하게 아실 것"이라고 답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비속어 유감 표명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말없이 돌아섰다. 서재훈 기자

비속어 논란은 대통령실의 능력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22일 김은혜 홍보수석이 발언 15시간 만에 한국 국회(야당)를 향한 “날리면”이라 해명했을 때, 기자들이 거듭 물은 두 가지가 있다. “이 XX”는 맞냐,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했냐는 것이었고 김 수석은 “검증 없이 이야기하겠나”라며 시인했다. “짜깁기와 왜곡”을 기자들이 했다는 뜻이냐는 질문에는 “그건 아니다”라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26일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했다고 한 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야당을 지목한 게 아니다” “‘이 XX’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며 해명을 뒤집었다. 그러다 ‘윤 대통령이 자기 발언을 기억 못하지만 바이든은 아니다’로 또 바뀌었다. 해명은 나올수록 수상하고 사과는 끝내 외면하니 일을 키우려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대응할 수는 없다.

이쯤 되면 궁금한 것은 ‘바이든-날리면’이 아니다. 과연 참모들이 윤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하기는 한 건지. 직접 해명을 들었다면 대통령에게 야당에 사과하도록 조언했는지. 윤 대통령 본인도 기억을 못해 음성 전문가에게 의뢰한 게 사실이라면 모든 사정을 솔직히 국민에게 털어놓자고 논의는 해 봤는지. 의문이 꼬리를 무는 게 나뿐만은 아닐 터다. 대통령실 해명을 대통령실이 반박하는 이 우스운 상황에 혹시나 참모들이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럴 자격은 없다고 하겠다. 그 파장을 내다보지 못한 무능, 대통령 심기를 살피느라 제대로 진언하지 못한 비겁이 바로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표변 또한 심각하다. 보도 직후 “많이 유감스러운 일”(주호영 원내대표)은 29일 “대통령을 흠집 내고 국익을 훼손하는 일” “매국적 국기문란 보도”(정진석 비대위원장)로 바뀌었다. TF까지 꾸려 보도 경위를 밝히라고 압박하고 대통령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등 ‘MBC 죽이기’에 총력을 쏟고 있다.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한 자유에 언론의 자유는 없는 듯하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몰라도 상식적 보수와 중도를 떠밀어내는 일이다. 언론과의 전쟁을 진짜 해법으로 본 것인지, 충성하느라 후폭풍을 따져보지도 않은 건지 알 수 없다. 아니, 알아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체로 무능하니까 비겁하다.

덧붙이자면 각료 중에도 국정 장악은커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이 있다. ‘실질적 인사제청권’을 행사했다는 한덕수 총리는 영빈관 예산도, 대통령 헬기 손상도 “신문 보고 알았다”고 했다. “언론 공격 받느라 고생 많이 한”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만 5세 입학을 보고했다가 34일 만에 사퇴했다. 부처 폐지가 임무라던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용혜인 의원으로부터 “여가부 폐지의 적임자”라는 말을 들었는데 왜 “동의할 수 없다”고 화를 냈는지는 좀 궁금하다.

물론 실언은 윤 대통령이 했다. 그러나 해프닝을 사태로 만든 건 참모진과 윤핵관이다. 측근들은 윤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해야 하는 직무상 의무와 정치적 책임이 있다. 정치 초보 검찰총장 출신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고, 비전 없이 반(反)문재인 기치만으로 당선시킨 책임이 작지 않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인물도 묻지 않고 혐오전술도 따지지 않아 그 여파를 국민이 감당하게 만든 책임이 그들의 것이다.

‘대통령 뜻을 꺾을 수 없었다’고 변명하거나 억울해 하려거든 오늘이라도 물러나기 바란다. 상황을 냉철히 판단하고 대통령을 설득하는 것은 참모의 핵심 능력이다. 판단과 결정을 미루는 이들은 얼마나 흔한가. 듣기 좋은 말을 누가 못 하겠는가. 경험적으로 볼 때, 직언하는 사람이 세 명만 되면 아무리 고집스러운 보스라도 설득할 수 있다. 지금 윤 대통령에게는 그 세 명이 없는 것 같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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