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유리방에서 쪽방까지 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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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유리방에서 쪽방까지 34년

입력
2022.09.30 01:30
수정
2022.10.1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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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탈출구 없는 그녀들의 인생
다른 집결지·업소방 떠돌며 성매매 굴레 갇혀
빚에 시달리고 폭력에 멍들고... "고단한 세월"
재개발 후 성매매 여성 삶 바뀌도록 지원 필요

편집자주

밤이 되면 홍등(紅燈)을 환히 밝힌 채 욕망을 자극했던 서울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영등포 수도골목. 재개발 열풍이 불어닥친 이곳도 몇 년 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수십 년간 유지된 ‘성매매 온상’ 꼬리표는 사실 국가가 방조한 것이었다. 국가는 집결지 땅 일부를 제공했고, 불법에 눈 감은 사이 업주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으로 통하는 좁은 골목 앞에 한 중년 여성이 나와 앉아 있다. '펨푸(호객꾼)'로 불리는데, 쪽방의 성매매 여성과 손님을 연결해 주고 소개료를 챙긴다. 서재훈 기자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20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4가 쪽방촌 입구. 골목 어귀 한 카페에서 만난 언니의 눈빛은 간절했다. 작은 키에 어눌한 말투, 비쩍 마른 체형. 누가 봐도 그는 쇠약해 보였다.

언니를 처음 본 건 3개월 전이었다. 그는 올해 쉰다섯 살이다. 30년 넘게 영등포를 떠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언니에게 인터뷰를 청했지만 한사코 거부했다. 신분을 노출하지 않겠다는, 거듭된 약속과 다짐에도 쉽게 믿지 않았다. 여전히 매매 여성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언니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유리방→휘파리→쪽방... 고통의 악순환

영등포는 다른 성매매 집결지와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 유리방과 휘파리, 쪽방 등 다양한 형태의 성매매 공간이 공존한다. 유리방은 유리문 안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호객한다. 휘파리는 원룸이나 주택에 살며 여성들이 직접 영업에 나선다.

각각 일하는 여성들의 나이대도 다르다. 20~40대는 유리방, 40~50대는 휘파리, 60세 이상은 쪽방에서 주로 활동한다. 언니는 34년 전 스물한 살 때 영등포에 터를 잡았다. 유리방부터 휘파리, 쪽방을 모두 거쳤다.

올해 7월 기준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규모. 그래픽=신동준 기자

어느 방으로 옮겨 가든 언니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젊은 시절 경험한 유리방은 안이 훤히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감시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유리방 여성들은 포주에게 매달 50만~60만 원을 방값으로 냈다. 영업을 못해도 월세는 그대로였다. 성매매로 번 수익도 포주와 절반씩 나눴다. 화장지, 콘돔 등 성매매에 필요한 물품을 사는 비용조차 종사자들의 몫이었다.

수입은 들쭉날쭉한데 나가는 돈은 고정돼 있으니 빚은 계속 쌓여 갔다. 언니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빌리는데 이자율이 또 엄청 높다”며 “일수를 떼듯 매일 이자까지 갖다 바쳐야 했다”고 말했다. 포주들은 성형수술을 압박하고 여성 종사자끼리 맞보증을 서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휘파리나 쪽방은 감시는 덜 했으나 환경은 훨씬 열악했다. 언니는 “쪽방의 여름과 겨울은 너무 덥고 추워, 봄ㆍ가을만 계속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쪽방에서 가장 두려웠던 건 일부 성 구매자의 횡포였다. 유리방에선 그나마 ‘삼촌’들이 막아줬지만, 쪽방은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없었다. 소위 ‘진상’ 손님을 만나도 그저 당하는 게 전부였다. 순순히 대가를 치르는 남성도 별로 없어 드잡이하듯 강제로 받아내야 했다.

성매매의 굴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는 29일 “성매매를 하면 엄청난 돈을 벌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많다”며 “우리가 만난 대부분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원이 굉장히 취약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34년 알 껍질 꼭 깨뜨릴 겁니다"

15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4가 성매매 집결지 '유리방' 업소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서재훈 기자

이쯤 되면 으레 나오는 반응이 있다. 누가 강제로 감금하는 것도 아닌데, 왜 집결지를 떠나지 못하느냐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성매매 종사자들의 좁은 인간관계에서 원인을 찾는다. 거의 모든 인적 교류나 의사소통이 집결지 안에서만 이뤄져 올바른 결정을 하는 것도, 결심 자체를 하는 것도 어렵다는 진단이다.

언니도 “아무 것도 모를 때 와서 달리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제대로 못 해본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5년이 10년이 되고, 다시 20년, 30년이 됐다.

언니는 얼마 전 큰 결단을 내렸다. 34년 성매매 인생에 종지부를 찍기로 한 것이다. 그는 지금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꾸리며 자활 교육을 받는 중이다.

“솔직히 아직 두려워요. 그런데 몇 달이라도 (다른) 직업 체험을 하고 나면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낼 수 있을 것도 같아요.” 나지막이 읊조렸지만, 힘이 실린 단어 하나하나에서 그의 의지가 느껴졌다. 언니는 인터뷰 내내 “알 껍질을 깨고 나오고 싶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주거, 일자리 등 다른 삶 기회 보장해야

15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인근 성매매 집결지 수도골목 풍경. 골목 오른편에 '휘파리방'으로 불리는 성매매 업소가 몰려 있다. 서재훈 기자

재개발이 확정된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는 2028년이면 자취를 감춘다. 이곳 66개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 146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집결지 폐쇄가 성매매 여성들의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집결지가 없어져도 업주와 여성이 짝을 이뤄 다른 집결지로 옮겨가는 일이 반복돼왔다. 영등포만 해도 용산역이나 천호동, 청량리 등 폐쇄된 집결지에서 넘어온 종사자들이 꽤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져 거리두기가 강화됐을 때도 다른 집결지 포주와 종사자들이 대거 영등포로 유입됐다. 영업할 방이 모자라 월세가 치솟을 정도였다.

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는 “집결지 여성들에게는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보장도, 경험도 없다”면서 “생계 해결을 위해 주거ㆍ일자리 지원이 시급하다”고 짚었다.

☞ [성매매 질긴 고리 끊으려면... '자활 지원'이 답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92908560002441 복사해 주소창에 입력하면 됩니다)


나주예 기자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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