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안 돼" 석탄화력 노동자도, 농부도, 연구원도 기후위기 행진한다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이대론 안 돼" 석탄화력 노동자도, 농부도, 연구원도 기후위기 행진한다

입력
2022.09.24 04:30
수정
2022.09.25 13:55
0 0

[‘9·24 기후정의행진’, 3년 만에 개최]
행진 참여하는 각계의 절박한 목소리
배달 노동자, 농민은 일터 위기 느끼고
과학기술 연구원은 해법 찾느라 걱정
재생에너지조합은 사업 퇴보에 좌절
어린이들은 "50년 후 내 삶은 힘들 것"


28년 차 화력발전소 노동자인 이종술씨는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24일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다. 본인 제공

“라이더에겐 길거리가 일터예요. 기후위기는 제 일터를 더 위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8년 차 배달 노동자(라이더) 김지수(29)씨의 말이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이종술(52)씨도 기후 걱정이 다르지 않다. “에너지 전환 과정이 힘들겠지만 감수하겠다는 동료들도 많습니다. 정부가 (탈석탄 정책의) 명확한 청사진을 내놓지 않으니 불안감만 커지고 있어요.”

농민은 어떨까. 충남 예산의 농부 엄청나(43)씨는 2020년 여름 50일 넘게 이어진 장마를 잊지 못한다. “하늘이 ‘갑 중의 갑’이라는 걸 체감하게 됐습니다.”

이들은 24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다. 오직 기후위기 극복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여러 지역, 다양한 직업과 배경의 시민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다.

2018년 스웨덴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 운동을 계기로 9월은 전 세계적인 기후행동의 달이 됐다. 한국에서도 2019년 기후시위가 열렸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한동안 대규모 행진은 개최되지 못했다.

지난 8월과 9월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간 폭우, 서울 면적의 4분의 1을 태운 지난 3월 동해안 산불 등 2022년에는 유독 기후재난이 잦았다.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과 불평등을 더욱 체감하게 된 올해, 시민들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기후정의행진으로 행할까.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행진에 참여하는 7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화력발전소 노동자 "탈석탄 청사진 마련되길"

2019년 9월 21일 서울 종각역 일대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 참가자들이 기후위기 대응책을 촉구하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제공

“제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기가 정말 험난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요. 그래서 조그만 목소리라도 같이 내보려 합니다.”

경남 하동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이종술씨는 보다 적극적인 탄소감축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8년간 화력발전소 운전 업무를 하며 세 자녀를 키웠다. 그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90년대만 해도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건 국가 발전을 위해서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씨는 “착잡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자랑스러웠던 직장은 어느새 ‘기후위기의 주범’이 됐고, 자신 역시 본의 아니게 기후 문제에 악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소 노동자들에게 기후위기는 일자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화력발전소 폐쇄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노후 석탄발전소 4기가 폐쇄됐다. 기후·환경단체들은 신규 화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는 등 더 적극적인 탈석탄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씨는 “에너지 전환 과정이 힘들겠지만 필요하다면 감수하겠다는 동료들도 많다”며 “다만 정부가 (탈석탄 정책의) 명확한 청사진을 내놓지 않으니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대의를 위해 개인의 고용이 희생되지 않도록 전환 과정에 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꼭 반영돼야 한다는 당부다.

배달 노동자 "거리 노동, 기후위기로 위협"

8년 차 배달을 하고 있는 김지수씨는 "기후위기로 일터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본인 제공

김지수씨는 동대문 의류시장을 거쳐 프랜차이즈 음식점, 배달 플랫폼 등에서 전업 라이더로 일하고 있다.

그는 최근 부쩍 기후위기를 ‘실존하는 위협’으로 경험했다. 길이 더 뜨거워졌고, 더 많이 물에 잠겼다. 한여름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빈도도 훨씬 늘었고, 9월이 넘어가도 여전히 도로가 뜨겁다.

올해 극심한 폭우·태풍 상황에서도 전업 라이더들은 배달료를 더 많이 받기 위해 일터로 나갔다. 대부분 플랫폼에서 비가 올 때 배달 10건을 하면 2만 원을 추가 지급하는 식으로 라이더를 모으기 때문이다.

김씨는 “‘일을 안 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당장 벌이가 급한 전업 라이더들은 하루 일당이 아쉽다”며 “되레 ‘오늘 바짝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다가 사고 나기가 쉽다”고 했다.

2019년 9월 21일 국제 기후 파업 주간을 맞아 서울 종로 1가 사거리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 참가자들이 '기후 위기가 다가오면 생존의 위협이 다가온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실제 최근 빗길에 미끄러져 6개월간 치료를 받은 동료도 있고,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물에 반쯤 잠긴 상황에서 배달을 한 동료도 있었다고 한다. ‘비가 더 자주 오니 더 많이 벌 수 있어서 좋다’는 라이더도 있지만, 일할 기회와, 보수, 안전의 불확실성이 올라간다는 점에서 마냥 좋게 볼 수 없다.

김씨는 “플랫폼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환경 변화를 면밀하게 조사하고 그에 맞는 라이더 보호 방안을 내놔야 한다”며 “배달 노동자의 작업 중지권과 보상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농민 "땅 살리는 정책 필요"

충남 예산에서 들깨 농사를 하는 엄청나씨는 한 명의 농부이자, 전국쌀생산자협회 회원으로서 9·24 기후정의행동에 참여한다. 그는 "농민들이 기후위기 해결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본인 제공

들깨와 허브 농사를 짓는 엄청나씨는 2020년 여름 장마 때 기르던 작물이 다 죽는 현장을 속절없이 지켜봤다. 다른 농부들이 심어둔 벼 역시 곰팡이가 피거나 햇빛을 보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해 장마는 분명 기후위기의 단면이었다.

“농민들은 그동안 농사를 ‘하늘과의 동업’이라고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2020년 여름을 견디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하늘과 동업하는 게 아니라, 하늘이 ‘갑 중의 갑’이라는 걸 체감하게 됐죠.”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민들은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농민들은 매년 기후가 들썩이다 보니 농사법과 병충해 방제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작물 생산량과 농민의 소득도 불안정한 상황이다.

엄씨는 “기후위기가 진행될수록 식량 자급문제가 중요해지는 만큼 땅을 살리는 정책이 더욱 필요하다”며 “하지만 정부의 기후변화 예산은 시설정비에만 쏠려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엄씨는 동료들과 함께 이번 행진에 참여한다. 그는 이번 행사를 통해 “농민들이 기후위기의 (피해의)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위기 해결의 주체로서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연구원 "막을 방법 찾아, 발 동동"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회원들과 행진에 참여하는 연구원 위선희씨. 본인 제공

“삼척블루파워 같은 신규석탄발전소를 건설하는 것만은 꼭 취소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부가 기후재난의 빈도를 낮추려 한다는 신뢰를 보여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자 위선희(32)씨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답을 내놨다. 과학기술 중소기업의 연구원이자,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젠더다양성위원장인 위씨도 ESC의 회원들과 함께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다.

ESC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교사, 작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과학기술을 주제로 함께하는 폭넓은 네트워크다. ESC에서도 기후위기는 언제나 ‘핫 이슈’다. 위씨는 “과학기술인 분들은 근거와 데이터가 명확하다면 빨리 수긍한다”며 “기후위기 문제도 과학적 근거가 드러난 만큼 회원들 모두 심각성을 이해하고 ‘어떻게 막아야 하지’라며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9년 9월 18일 서울 중구 청계천 광통교에서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 참가자들이 행사를 알리는 캠페인을 위해 자전거도로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위씨는 다른 많은 참가자들처럼 대전에서 서울까지 와서 행진에 참여한다.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도 있고, 후원을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직접 발로 걸으려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바글바글 열정을 뽑아내야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인, 정부, 기업이 하루 빨리 기후위기 대책을 시행하게 하는 힘은 '시민'에 있다는 믿음이다.

재생에너지 협동조합 "서울 전기는 서울에서 생산해야"

서울 강서양천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이현주씨는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주민이 공유하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본인 제공

“우리 지역의 전기는 가능한 한 우리 지역에서 생산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 이익도 지역에 환원해야 하고요.”

서울 양천구 주민 이현주(63)씨는 2016년부터 강서양천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다.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이익을 지역 주민들이 공유한다’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다.

서울은 국토 면적의 0.6%만 차지하지만 국내 전기 19.8%(가정·상업 부문)를 쓴다. 그러나 전체 발전량 중 0.9%만이 서울에서 생산된다. 그 밖의 전력은 지방의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며, 그 대가는 지방 주민이 치른다.

2019년 9월 27일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결석 시위’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날 세계 곳곳에서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와 관련하여 각국 정상들에게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학생 시위가 열렸다. 코리아타임스

이씨는 지역 공공시설 유휴부지를 임대해 총 4개의 태양광 발전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주차장·공공기관 옥상 등이다. 순이익 약 70%는 조합원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환경 교육, 복지관 기부 등으로 지역사회에 환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엔 발전 시설 확대에 애를 먹고 있다. 서울 내 다른 협동조합과 추진한 강남구 수서역 주차장 태양광발전소 건설 사업은 “주변 환경이 저해되고 경관을 해친다”는 강남구청과 주민 반발에 밀려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패소, 취소됐다. 서울시 공모로 공공기관 2곳에 진행한 태양광 발전단지 설치 사업은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좌초됐다고 한다.

이씨는 “에너지 전환과 자급을 위해선 유휴부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며 “주민 이익 공유를 통한 발전 사업에 정부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했다.

보건의료계 "기후위기는 가장 큰 건강 위협"

11년 차 의사인 전진한씨는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을 맡고 있다. 본인 제공

“기후위기는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요인이 됐습니다.”

전진한(36)씨는 11년 차 의사다. 주말엔 가정의학과 의원에서 진료를 하고, 주중엔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에서 활동가로 일한다. 지난 22일 의료인 569명이 이 단체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선언을 했다.

기후위기가 보건위기라는 건 이미 대부분 의료진이 동의하는 바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기후변화는 인류가 마주한 가장 큰 건강 위협”이라고 선언했다. 세계 4,500만 명의 의료인을 대표하는 450개 조직이 전 세계 국가 지도자들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 질병관리청도 지난 4월 기후보건영향평가 보고서를 최초로 작성했다.

2019년 9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기후위기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파키스탄에선 홍수 피해로 1,486명이 사망했다. 그중 약 530명이 어린이였다. 2019년 전 세계 폭염 질환 사망자는 35만 명이었다.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모기가 30% 이상 늘어나며, 이는 말라리아·지카 바이러스·댕기열 피해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기온 상승으로 인한 박쥐의 서식지 변화가 코로나19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전씨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는 공공 의료가 빈약할 때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는지 경험했다”며 “폭염·수해 등 급격한 자연재해로 인한 응급 환자를 돌볼 응급의료시스템도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강릉의 초등학생 "50년 후 나의 삶은요?"

23일 강원도 강릉시 청소년마을학교 '날다' 학생들이 기후정의행진 참여를 위해 만든 피켓을 들고 있다. '날다' 제공

“여름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바다에 가서 놀아요. 그런데 몇 년 지나면 바다가 쓰레기로 가득 찰 것만 같아요.”

강릉에 사는 초등학생 유한결(12)군은 미래가 무섭다. 아무리 주워도 새로운 쓰레기가 몰려오고, 해안침식 문제가 심각해 모래 사장은 사라진다. 여름은 뜨거워지고, 태풍은 거세진다. 한결군은 지역 청소년마을학교인 ‘날다’ 친구들과 함께 서울로 이동,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다.

한결군과 친구들은 평생을 이상기후 속에서 살았다. 북극의 얼음은 늘 녹고 있다고 하고, 처음부터 물은 ‘사먹는’ 것이었고, 좋아하던 동물은 멸종이 된다. 인근 삼척의 석탄화력발전소는 온갖 우려에도 건설되고 있다.

김가온올(12)군은 “환경 문제를 보면 ‘50세 쯤엔 사는 게 많이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내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아이들 인식은 정확하고도 매섭다. 강지환(12)군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데, 한국의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탄소중립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국내 2030NDC는 2018년 대비 40% 감축인데, 국제 연구기관들은 최소 60% 이상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낙관한다. 이승호(12)군은 “기후행진에 참여함으로써 세상이 조금씩 바뀔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행진의 목소리에 사회가 조금은 귀 기울여주리란 기대다. 이 기대에 사회는 응답할까.

신혜정 기자
김현종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라이브 이슈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