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걱정 없는 독일 에너지 자립마을 슐뢰벤
소똥으로 바이오가스 생산, 마을 열 80% 충당
남는 열 팔아 남는 수익은 마을 주민들끼리 나눠
협동조합 통한 시민참여로 불필요한 갈등 없애
우리나라는 여전히 공공주도... 주민 설득 어려워
갈등 끝에 올해 4월에야 첫 삽 떠...2024년 완공
"바로 옆 동네에 사는데 여기서 일하며 바이오가스 좋은 점을 많이 느낍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스 요금이 많이 올라 걱정들이 많은데 여기는 바깥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아 부러울 따름이죠."
14일(현지시간) 독일 중부 작은 도시 슐뢰벤의 열병합 발전 시설에서 만난 폴커 베이어씨는 슐뢰벤의 에너지 자립을 치켜세웠다. 모두가 에너지 위기를 입에 달고 살며 다가오는 겨울을 염려하는데, 슐뢰벤 사람들은 큰 걱정 없이 평소처럼 평화롭기 때문이다.
슐뢰벤은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차로 약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1,000명 남짓인 작은 도시다. 튀링헨주 소속 6개 마을로 구성됐는데, 축산 분뇨로 바이오가스를 만들어 마을에 필요한 열 에너지의 80%가량을 충당하는 에너지 자립마을이다. 러시아가 독일에 수출하던 천연가스 공급을 끊어 독일 내 가스값이 폭등해도 슐뢰벤은 그닥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다.
에너지 자립마을은 지역에서 만들어낸 바이오에너지로 마을에 필요한 에너지의 50% 이상을 마련하는 곳이다. 독일연방식품농업부(BMEL)가 심사를 하는데, 현재 독일에 171개 도시가 에너지자립 마을로 뽑혔다.
이 날은 독일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에 갑작스런 비바람까지 몰아쳐 가시거리가 짧았음에도 마을 입구로 향하는 길목에서부터 거대한 바이오가스 생산 시설이 또렷하게 보였다. 마을 입구가 가까워지면서 혹여나 축산 분뇨 냄새가 날까 싶어 코를 움켜쥐었지만, 마을에는 비에 젖은 흙냄새만 구수하게 퍼질 뿐 쿰쿰한 소똥 냄새는 없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마을 입구에서 1.6㎞ 떨어진 바이오가스 생산 시설에 들어서자 강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축산 분뇨를 가스화하면서 생기는 냄새와 소 420여 마리가 있는 대규모 축사에서 흘러나온 냄새가 뒤엉킨 탓이다. 생산 시설을 부러 마을에서 1㎞ 이상 떨어뜨려 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곳 축사의 소들이 배출하는 분뇨는 해마다 1만 톤에 달한다. 이를 목초, 옥수수 등과 절반씩 섞어 바이오가스를 만든 뒤 가스관을 통해 마을 안에 있는 열병합발전소로 보내면, 1년 동안 약 800가구가 쓸 수 있는 열 에너지와 1,88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기가 생산된다. 슐뢰벤은 지역 난방 배관을 통해 140여 가구와 공공 및 상업 건물 등 행정 구역에 열을 공급하고, 나머지는 외부에 팔아 1년에 약 100만 유로(13억9,000만 원)를 번다. 이 과정에서 덤으로 이산화탄소(CO₂) 발생량을 해마다 2.000톤가량 줄인다.
"주민들이 직접 만들자 결정했기에 큰 갈등 없어"
축산 분뇨를 활용한 바이오가스 생산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술 중 하나다. 가축의 배설물에는 다량의 유기물, 질소, 인 등이 들어 있어 함부로 하천이나 바다로 흘려보낼 경우 수질을 오염시키지만, 바이오가스로 만들면 온실가스 감축은 물론, 에너지 생산, 일자리 창출 등 여러 장점을 갖기 때문이다.
독일 기후·에너지전환 주요 싱크탱크인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연구소의 드미트리 페샤 동아시아 프로그램 리더는 "농촌 마을에 짓는 소규모 바이오매스 시설은 마을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자체적으로 순환시킨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주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원료에서 부담스러운 냄새가 날 수밖에 없고 가스 생산 과정에서도 달갑잖은 냄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악취 때문에 삶의 질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동산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관련 시설을 향해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독일은 해결의 실마리를 협동조합에서 찾았다. 한국처럼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기업이 사업을 구상하고 난 뒤 주민을 설득하는 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을 주민들이 직접 판단해서 바이오가스 사업을 시작하게 한 것이다.
실제 슐뢰벤의 경우, 마을 사람들끼리 2006년부터 바이오에너지 마을 만들기에 대한 의견을 모은 뒤, 2009년 협동조합을 세워 바이오가스 설비 도입을 결정했다. 2011년 관련 설비를 다 갖출 때까지 5년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모든 것을 주민들 뜻에 따랐기 때문에 큰 갈등은 없었다.
벤야민 다네만 독일 에너지협동조합연합회(DGRV) 홍보대변인은 "협동조합을 통해 시민들을 사업에 참여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재생에너지에 대한) 의식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그 결과 독일 에너지 전환의 40%가 시민의 손에서 시작했다 할 정도로 독일은 협동조합을 통한 재생에너지 발전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주민 반발에 줄곧 무산되다 이제야 첫 삽 떠
국내에서도 축산 분뇨를 활용한 바이오가스 생산과 이를 통한 지방 소도시의 에너지 자립은 중요한 이슈다. 축산업이 갈수록 대규모화하면서 가축 분뇨가 해마다 14만 톤 넘게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농축산부문 탄소 배출을 2050년까지 2018년 대비 37.7% 줄이겠다고 발표하면서 "바이오매스 에너지화 등을 추진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통한 농촌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가축 분뇨 에너지화 시설 처리율도 2018년 5% 안팎이었던 것을 2050년까지 35% 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도 주민들의 의중을 먼저 모으기보다 민간 또는 공공 주도로 가축 분뇨 처리 시설을 지으려 하다 보니 주민들 반대로 사업이 무산되는 과정이 되풀이되고 있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포기한 가축 분뇨 처리 시설 사업만 34개소에 달한다. 그러던 중 주민 설득 끝에 첫 삽을 뜨게 된 게 국토교통부 소속 공공기관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의 '공공형 가축 분뇨 에너지화 시설' 이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주도해 가축 분뇨 등 유기성 폐자원으로 바이오 에너지를 만들고 공급하는 프로젝트이며 올해 4월 도입됐다.
계획대로 2024년에 준공되면 제주 지역 가축 분뇨와 도축 부산 폐기물 등 유기성 폐자원을 연간 7만4,000톤 처리해 해마다 1,800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원유 4,767배럴을 대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온실 가스도 2,460톤가량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이 같은 시설을 2030년까지 10개 더 짓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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