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키는 보일러" 콘덴싱? 해외에선 2025년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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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키는 보일러" 콘덴싱? 해외에선 2025년 퇴출

입력
2022.09.21 04:30
수정
2022.09.2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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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A, 콘덴싱 등 가스보일러 퇴출 권고하고
세계 각국, 탄소배출 적은 히트펌프로 전환
국내선 히트펌프 지원 않고, 콘덴싱 지원
"국내도 상용기술 있어, 시장 형성 정부 몫"

[그린워싱탐정]<10>'친환경 보일러'의 비밀

편집자주

지구는 병들어 가는데, 주변에는 친환경이 넘칩니다. 이 제품도, 이 기업도, 이 서비스도 친환경이라고 홍보를 하지요. 한국일보는 우리 주변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추적하고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촉구하는 시리즈를 4주에 한번 연재합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국내 한 보일러 업체의 콘덴싱 보일러 광고. "지구온난화를 멈추자"며 콘덴싱 보일러 사용을 권장하지만 국제기준과는 다르다. 광고 캡처

“친환경 보일러 보조금, 온라인으로 신청해요!”

지난 8월 환경부 보일러 교체 사업의 홍보 자료 속 표현이다. 열 효율이 떨어지는 일반 보일러를 콘덴싱 보일러로 바꿀 경우 10만 원(저소득층 60만 원)을 지급한다. 2017년부터 시행해 지난해까지 약 72만 대를 지원했다.

그러나 이 ‘친환경 보일러’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탄소중립을 위해 2025년 퇴출돼야 한다고 권고한 보일러다. ‘일반 보일러보다 열 효율이 높다’고 한들, 여전히 화석연료(천연가스)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부의 '친환경 보일러' 교체 지원사업 홍보 자료. 친환경 보일러는 콘덴싱 보일러를 뜻한다. 환경부 제공

따라서 영국·오스트리아·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는 이미 금지 계획을 밝혔고, 미국·독일 등에서도 금지를 둘러싼 논쟁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들 국가는 가스 보일러의 대체재인 히트펌프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히트펌프는 공기열·지열 등을 이용한 전기 난방 장치이며, 탄소배출을 일반 보일러보다 획기적으로 줄인다.

히트펌프는 국내에도 상용기술이 있지만, 환경부는 히트펌프를 외면하고 콘덴싱 보일러에 보조금을 주면서 국제 기준에 역행하고 있다. 난방 부문 탈탄소 전문가들은 “친환경 가스 보일러는 시대착오적 표현”이라며 “국내 탄소중립 정책이 뒤처져 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콘덴싱 보일러, 등장한 지 40년 됐다

콘덴싱 보일러는 일반 보일러의 열 교환기를 확장한 제품을 뜻한다. 일반적인 가스 보일러는 도시가스를 태워 냉수를 온수로 바꾸는 열 교환기 1개가 설치돼 있다. 물을 한 번 데운 가스는 배기구로 빠져나가게 되는데, 콘덴싱 보일러는 이 가스를 재활용한다. 열 교환기를 1개 더 설치해 폐열로 다시 한번 난방을 하는 것이다.


국내 한 보일러 업체의 콘덴싱 보일러 광고. "지구를 지키는 기술"이라고 적혀 있다. 업체 홈페이지 캡처

환경부에 따르면, 일반 보일러의 열 효율은 80%인 데 반해, ‘친환경 보일러’ 기준은 92%다. 투입된 가스의 열량 중 92%가 난방 에너지로 변환됐고, 8%만 누실된다는 의미다. 일반 보일러보다 12% 많은 에너지를 붙잡았으므로 효율이 높아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정도 효율 상승으로도 콘덴싱이 ‘친환경’인 시기가 있었다. 콘덴싱 보일러는 1980년대 초반 네덜란드에서 처음 개발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은 2005년에 신규 보일러 설치 시 열 효율이 86% 이상인 콘덴싱 보일러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매년 보일러가 140만 개씩 설치됐는데, 이것을 전부 콘덴싱 보일러로 설치토록 한 것이다. 이때 네덜란드는 이미 전체 보일러의 80%가, 독일에서는 50%가 콘덴싱 보일러였다고 한다. 현재 영국 내 콘덴싱 보일러 보급률은 90% 이상이다.

2004년 국내 한 보일러 관련 전문지에 실린 콘덴싱 보일러 관련 기고문 일부. "선진국은 이미 시행" "정부차원 지원책 절실"이라는 요구와 달리, 국내 콘덴싱 보일러 의무화는 16년 뒤에야 현실화됐다. 기고문 캡처

한국도 이맘때 콘덴싱 보일러가 개발됐으나, 별다른 지원책이 없어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콘덴싱 보일러는 일반 보일러보다 20만 원가량 비쌌는데, 시장에서 이 비용을 지출하지 않았고 정부도 보완책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 수요가 높았던 유럽권에서는 발 빠른 지원책 덕에 콘덴싱 보일러가 기본값이 된 반면, 국내에선 잘 보급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콘덴싱 보일러 보급률은 20~30%로 알려져 있다.

국내 한 보일러 업체의 콘덴싱 보일러 광고. "친환경도 급이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다. 업체 제공


2020년 의무화 시행, 외국서는 퇴출 수순

국내에서 콘덴싱 보일러는 2020년 미세먼지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의무화됐다. 광주·대구·대전·부산·서울·세종 등 대기오염이 심각한 지역을 대기관리권역으로 설정하고, 권역 내 신규 보일러 설치 시 열 효율이 92% 이상인 보일러를 설치해야 한다.


국내 한 보일러 업체의 콘덴싱 보일러 광고. 환경부와 서울시가 친환경 보일러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광고 캡처

콘덴싱 보일러가 일반 보일러보다 20만 원 정도 비싸다는 점을 감안해 10만 원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60% 대 40%로 나눠 지원해준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비 예산 △2017년 10억 원 △2018년 10억 원 △2019년 360억 원 △2020년 323억 원 △2021년 335억 원이 편성됐다.

이 예산은 지자체가 40%에 해당하는 예산을 편성해야만 집행되어서, 실제 집행액은 그보다 적다. △2017년 1만1,176대 △2018년 1만842대 △2019년 5만7,697대 △2020년 36만1,587대 △2021년 27만8,981대가 지급됐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 시행 후 30%대였던 콘덴싱 보일러 판매 비중이 80%대로 올랐다”면서도 “현재 보급 속도가 적정한지 평가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2019년 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이 서울 노원구의 한 '친환경' 보일러 교체사업 현장을 방문했다. 환경부 제공

한국이 이제야 콘덴싱 보일러 장려에 나선 사이, 국제사회에서는 퇴출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IEA는 ‘2050년 넷제로: 전 세계 에너지 부문을 위한 로드맵’ 보고서를 발간했다. IEA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심의 에너지 협력 기구다.

이 보고서에서 IEA는 2020년대에 취해야 할 주요 행동 중 하나로 "석탄화력발전소, 가스 보일러, 그리고 전통적인 내연기관차와 같은 특정 화석연료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거나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가스 보일러의 연료로 100% 수소를 사용하는 등 가스로 인한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 수 없다면, 가스 보일러를 2025년까지 퇴출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50 넷제로 보고서에 2025년까지 신규 화석연료 보일러를 퇴출해야 한다(맨 왼쪽 위 빨간 네모)고 적혀 있다. IEA 캡처

열 효율을 늘렸다 하더라도 탄소 배출량이 상당해, 탄소중립을 위해선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용상 에너지공유 대표(녹색건축인증·제로에너지빌딩 자문위원)는 “가스를 원료로 사용해 탄소 문제를 일으키는 보일러는 더 이상 친환경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 콘덴싱 보일러 보급률이 90%대에 달하는 영국은 여전히 난방 부문 탄소 배출량이 전체의 23%나 차지한다.

이렇다보니 오스트리아 2023년, 영국 2025년, 네덜란드는 2026년부터 신규 가스보일러 설치를 금지했다. 지난해 국제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에 따르면, 미국 6개 주에서 건물의 가스 사용(가스 보일러·스토브 등)이 제한되고 있다. S&P는 "미국 전역의 주 정부가 더 공격적인 탄소 감축 목표를 추구하며 천연가스 시장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스 난방 대안 히트펌프, 국내서는 찬밥

가스 보일러를 퇴출한 유럽의 선택은 '전기 난방'이다. 화석연료가 아닌 전기를 이용해 난방을 하겠다는 취지다.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도입하는 것과 유사한 구조다. 전기 난방 핵심은 히트펌프다.


영국의 한 주택에 설치된 공기열 히트펌프. 에어컨 실외기처럼 생겼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히트펌프는 냉매를 이용해 외부 열을 실내로 끌어오는 기계다. 땅에서 열을 끌어오면 지열 히트펌프, 물에서 끌어오면 수열 히트펌프, 공기에서 끌어오면 공기열 히트펌프라고 부른다. 공기열 히트펌프는 냉매를 이용해 실외 공기의 열을 실내로 끌어온다는 점에서, 에어컨의 원리를 거꾸로 뒤집은 것과 같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전기를 이용해도 전기의 탄소배출량이 많으면 히트펌프의 탄소배출량도 많은 게 아닐까? 환경부 관계자도 "현재 국내 전력 시장에 재생에너지 기반 전기가 많지 않다. 전기가 더 많이 재생에너지로 생산되면 난방 전력화를 고려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IEA 따르면 그렇지 않다. 히트펌프의 열 효율이 매우 높은 탓이다.

사실, 전기 자체는 가스보다 탄소배출량이 많다. 가스로 에너지 1kWh를 만들려면 탄소가 0.202㎏ 배출되는 반면, 전기는 0.4㎏ 이상 배출된다. 전기를 만드는 데 어떤 연료(석유·석탄·재생에너지 등)를 투입하냐에 따라 다르지만, 국내(한국전력공사 탄소배출계산기)에서는 0.424㎏으로 계산한다. 에너지 1kWh를 만들 땐 가스가 전기보다 깨끗한 것이다.

문제는 이 에너지를 열로 바꾸는 과정이다. 열 효율 95%인 가스 보일러는 에너지 1kWh로 열을 0.95kWh를 만든다. 반면, 히트펌프(SPF 3.0)는 전기 1kWh로 열을 3kWh 만들 수 있다. 수열·지열·공기열 등 외부 자연의 열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물에 열 에너지 1,000kWh를 공급하려면, 가스 보일러는 에너지를 1,052.63kWh 만들어야 한다. 탄소는 212.63㎏이 배출된다. 반면, 히트펌프는 에너지를 333.3kWh만 만들면 된다. 탄소는 141.33㎏을 배출한다. 탄소 배출이 30% 이상 줄어든다.


지난 1월 인천시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게다가 이는 국내 전력의 60% 이상이 석탄과 가스에서 나오는 상황을 토대로 계산한 것이다. 전력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올라가서 전기 1kWh의 탄소배출량이 줄어든다면, 히트펌프로 인한 배출량도 준다. 게다가 최근 히트펌프는 더 성능이 좋아져 전기 1kWh로 열을 최소 4kWh 이상 만든다.

이공훈 한국기계연구원 열에너지솔루션연구실 책임연구원은 “국내에서도 히트펌프를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력이 확보돼 있다”며 “일반 보일러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가격 인하를 위한 시장을 형성하는 건 정부의 몫”이라고 했다. 귀뚜라미 등이 히트펌프 제품을 내놓고 있다.

히트펌프 지원책 없어…"공기열 재생에너지 지원부터"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히트펌프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유럽의 기후변화 싱크탱크 규제지원프로젝트(RAP)에 따르면, 지난해 노르웨이의 히트펌프 보급률은 60.4%에 달한다. 핀란드 40.8%, 스웨덴 42.7%, 에스토니아 34.3%, 덴마크 19.1% 순이다.


미국의 한 지역에 설치된 히트펌프. 미국 에너지부 제공

프랑스는 2030년까지 열 소비의 38%를 히트펌프로 조달하겠다고 밝혔고, 2020년에만 40만 대가 팔렸다. 2020년 영국도 2028년까지 매년 히트펌프를 60만 대씩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직접 보조금도 지급한다.

그러나 국내에선 움직임이 없다. 가스 보일러처럼 설치 지원금을 주는 정부 정책은 없고, 건물에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게 전부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신·재생에너지 설치 의무화 제도'에 따르면, 연면적 1,000㎡ 이상인 공공기관은 건물 총 에너지사용량의 32%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조달해야 한다. 이때 히트펌프로 만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인정해준다. 그러나 이마저도 신·재생에너지에 지열과 수열만 있을 뿐, 공기열은 포함돼 있지 않아 공기열 히트펌프 업계에서는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

공기열 히트펌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KT 관계자는 “공기열 히트펌프는 설치가 간단해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히트펌프”라며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에서는 공기열을 재생에너지로 지정해 히트펌프 산업을 활성화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공기열 재생에너지 지정을 위해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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