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기증인과 이식인의 특별한 산행… "우린 신장으로 맺어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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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기증인과 이식인의 특별한 산행… "우린 신장으로 맺어진 사이"

입력
2022.09.19 15:08
수정
2022.09.1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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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 달 맞아 함께 동해안 걸어
"생명 나누는 것보다 기쁜 일은 없어"

2015년 7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신장을 주고받은 기증인 이영천(오른쪽)씨와 이식인 김동조씨가 15일 강원 속초시 해파랑길 산행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여기 특별한 연으로 맺어진 두 사람이 있다. 경기 화성시에 사는 이영천(66)씨와 인천 남동구에 거주하는 김동조(53)씨. 사는 곳도 나이도 다르지만 이들은 ‘신장’을 나눈 사이다. 7년 전 김씨가 만성신부전증으로 신장 기능이 5%밖에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았을 무렵, 이씨가 이름 모를 상대를 위해 기꺼이 장기를 내놓은 게 아름다운 동행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15, 16일 강원 일대 해파랑길 산행에 올랐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9월 장기기증의 달을 맞아 마련한 산행에 기증인과 이식인으로 이뤄진 새생명나눔회 회원들과 함께 한 것이다. 기증인과 이식인의 교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2년간 중단됐다가 올해 재개됐다. 본부는 한 사람의 장기 기증으로 아홉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속초시에서 고성군까지 이어지는 99.9㎞ 길이를 코스로 짰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소속 새생명나눔회 회원들이 15일 강원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이날 산행에는 회원 51명이 참석했다. 신장ㆍ간 기증인 44명, 신장 이식인 7명이다. 서로 신장을 주고받은 기증인과 이식인 ‘커플’도 포함됐다. 참석자들은 동해안을 걸으며 지난 안부를 묻고 생명으로 묶인 귀한 인연을 되짚는 시간을 가졌다.

이씨와 김씨도 신장을 나눈 2015년 7월을 떠올리며 감사함을 되새겼다. 중학생 때부터 신장염을 앓던 김씨는 성인이 되고 신장 수치가 급격하게 떨어지자 2009년 말부터 투석을 받기 시작했다. 김씨는 “5년 8개월 동안 매주 세 번씩 4시간 투석을 받았다”면서 “기증 직전에는 혈압이 떨어져 투석조차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절망에 빠져 있을 즈음, 구세주처럼 나타난 이가 이씨다.

이씨는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수술한 뒤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며 “60세가 됐을 때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수술이 끝나자 김씨 어머니는 이씨 손을 꼭 잡고 “감사하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김씨도 “당신이 아니었으면 기증을 못 받았을지도 모른다”면서 감격해 했으나, 이씨는 외려 “서로 반씩만 아파도 안 죽고 살아 있으면 그게 행복한 일”이라며 이식인을 위로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소속 새생명나눔회 회원들이 15일 강원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김씨는 수술 후 가벼운 산행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두 사람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산행을 같이한 건 처음이다. 이들 외에도 부부 신장 기증인, 이식인 아내가 제3자에게 릴레이로 신장을 기증한 사연자도 행사에 동참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60세가 넘은 고령에도 거뜬히 산행을 즐겼다. 장기 기증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편견을 몸소 불식시킨 셈이다. 이씨는 장기 기증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한 사람의 목숨이 위독할 때 내 생명을 조금이라도 나눠 둘 다 살 수 있다면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김씨 역시 “남에게서 소중한 생명을 받은 만큼 나도 작은 것부터 나누며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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