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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찰스라는 이름에 대하여

입력
2022.09.18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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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피커딜리 서커스 대형 스크린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진이 투영되고 있다. AP 뉴시스

영국 런던의 피커딜리 서커스 대형 스크린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진이 투영되고 있다. AP 뉴시스

며칠 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세상을 떴다. 윤석열 대통령의 트위터 영어 애도문에서 이름 철자를 틀렸다가 지적받고 고쳤다. 주된 철자는 Elizabeth지만 변이형 Elisabeth도 있고 둘 다 발음도 같으니 별일 아닐 듯 싶으나, 반대로 철자가 Elisabeth인 사람 이름을 z로 써도 역시 실례가 된다. 철자법이 완전히 정착되지는 않았던 16세기의 엘리자베스 1세는 Elisabeth라는 변이형도 왕왕 보이지만, 19세기 이후는 거의 z다. 영어는 철자가 워낙 복잡하고, 비영어권 출신들은 본인 성명 발음을 남들이 틀려도 대강 넘어갈 때도 많아 이민 2세로 가면 아예 굳어지기도 하는데, 적어도 눈에 보이는 철자는 안 틀려야 바람직하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과 캐나다 총리 트뤼도는 프랑스어 트위터에 영어식 Elizabeth로 썼다. 유럽 왕족 이름들은 대다수 유럽 언어에서 자국어 방식으로 부르다가, 현대에는 독일어, 프랑스어 등은 원어 이름을 많이 쓴다. 독일 매체도 철자 Elisabeth[엘리자베트]가 소수다. 캐나다 프랑스어 언론은 프랑스보다도 언어에 보수적인 면모도 있어서 Élisabeth를 쓰는데, 캐나다 정부의 공식 프랑스어 철자는 영어처럼 Elizabeth다.

이탈리아어(Elisabetta), 스페인어/포르투갈어(Isabel) 등은 여전히 자국어식을 더 선호한다. 이제 국왕이 된 Charles[찰스]와 왕자 William[윌리엄]을 독일어는 Karl[카를], Wilhelm[빌헬름]으로 안 부르지만, 스페인어는 Carlos[카를로스], Guillermo[기예르모]로 부른다. 이렇듯 언어권마다 고유명사의 자국어 형태 선호 정도는 다르다.

드디어 즉위한 찰스 3세의 이름도 게르만어인 독일어 Karl[카를]이 프랑스어 Charles[샤를]을 거쳐 게르만어인 영어로 다시 들어간 것이다. 이 이름은 이탈리아어 Carlo[카를로], 체코어 Karel[카렐] 등 다수 유럽 언어에서 게르만어 자음 [k]를 간직한 형태이고 왕족 이름도 자국어를 쓰는데,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어, 스웨덴어 등에서 영국 왕족 이름은 자국어식 Karl이 아닌 영어식 Charles로 표기한다.

'임금'을 뜻하는 체코어(král), 폴란드어(król), 헝가리어(király)는 프랑크왕국 '카를 대제'의 Karl에서 유래한다. 프랑크왕국 영토에 살았거나 그 영향을 받은 민족들의 언어다. 영어 queen이 스웨덴어 kvinna[크빈나: 여자]와 뿌리가 같듯, 독일어 Kerl[케를: 사나이] 따위에서 '왕'의 뜻이 됐다는 설도 있으나, 이와 어원이 같은 고유명사 '카를(대제)'이 일반명사 '왕'이 됐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로마의 Caesar[카이사르]에서 '황제'를 뜻하는 독일어 Kaiser[카이저], 러시아어 царь[차르]가 생긴 것과도 비슷하다.

'찰스 왕'은 체코어(král Karel) 등 몇몇 슬라브어와 헝가리어(Károly király)에서 둘 다 어원이 같고 발음이 비슷한 말로 불리게 된다. 찰스, 카를, 카를로스 등은 왕에 어울리는 이름인 셈인데, 언제까지 군주제가 이어질지 모르지만 카를 대제(독일어 Karl der Große, 프랑스어 Charlemagne, 라틴어 Carolus Magnus)에서 시작한 '카를/샤를/찰스' 왕을 찰스 3세가 마지막으로 장식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신견식 번역가·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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