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탑 건축은 신라의 야심찬 '강대국 프로젝트'였다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황룡사탑 건축은 신라의 야심찬 '강대국 프로젝트'였다

입력
2022.09.15 19:00
수정
2022.09.16 16:18
0 0
자현
자현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선덕여왕 황룡사 9층목탑 건축
국민 자긍심 고취 위한 대역사
현 시국에도 그 정신 되새겨봐야

7세기 동아시아에는 여성 군주가 통치하던 여인천하가 열린다. 일본의 스이코(추고) 천황(재위 593∼628)을 시작으로 신라의 선덕여왕(632∼647), 그리고 중국의 금륜성신황제(재위 690∼705) 즉 측천무후가 연이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불교를 중심으로 국가를 위한 엄청난 일들을 단행한다.

스이코 천황은 일본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쇼토쿠태자(성덕태자)를 섭정으로 해서 불교 중심의 정국 개혁을 단행한다. 또 측천무후는 중국의 500명 넘는 황제 중 유일한 여성으로, '정관의 치'로 불리는 당 태종의 치세를 이어 당나라를 세계 최강국으로 끌어올린다. 측천의 황제 이름인 '금륜성신(金輪聖神)'은 불교의 이상 군주인 전륜성왕을 모델로 한 것이다.

선덕여왕도 분황사를 창건하는 등 불교적인 많은 일을 했지만, 당시 대진운이 좋지 않았다. 선덕여왕 때 적국 백제는 시호에 '무(武)'가 들어가는 강력한 '로맨틱 가이' 무왕의 치세였다. 무왕은 젊어서는 적국 신라로 잠입해 진평왕의 딸이자 선덕여왕의 동생인 선화공주와 희대의 로맨스를 만든다. 그리고 왕이 되어서는 군대를 직접 거느리고 신라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무왕과 달리 여성인 선덕은 직접 군대를 지휘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바로 김유신이다. 김유신이 천하의 명장이지만 당시는 경험이 부족했다. 또 무왕이라는 영명한 군주가 직접 지휘하는 군대를 감당하는 것은 누구도 쉽지 않았다. 국왕이 직접 전투에 나선다는 건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는 그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선덕은 불교를 통한 국론 결집에 나선다. 이에 따라 당나라에 유학 중이던 자장율사의 귀국을 요청한다. 자장은 당태종과 황태자에게도 존중받던 고승으로, 귀국 후 대국통(후일의 국사)이 되어 신라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심어주려고 했다. 이렇게 추진되는 것이 국찰 황룡사에 축조되는 세계 최고의 9층목탑(약 80m)이다.

흥미로운 것은 구층목탑이 신라의 세계 정복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구층목탑의 각 층에는 주변 국가를 정복하려는 원대한 뜻이 서려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적국인 백제·고구려·일본 외에도 북쪽으로 말갈·거란·여진이 있다. 즉 고구려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더 압권은 정복 대상 국가에 중화 즉 중국이 있다는 점이다. 흔히 신라는 당과 친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필요에 의한 외교적인 관점이었을 뿐이다.

당시 당나라는 로마를 압도하는 세계 최강국이었다. 그것도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제로 평가받는 당태종의 치세였다. 요즘으로 치면 미국보다도 더 강력한 슈퍼파워였던 셈이다. 이런 중국을 넘어서려는 호연지기가 황룡사 구층목탑에 녹아 있는 것이다. 또 이 일은 붓다의 위신력으로 반드시 성취된다고 신라인들은 믿고 있었다.

자장이 주도한 구층목탑을 통한 신라인의 자부심 고취는 유효했다. 신라는 불과 1세대 만에 열세를 반전시켜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역시 삼국통일 전 신라와 비슷하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다자간의 갈등 구조 속에서, 우리의 운신 폭은 매우 제한적이다. 여기에 내부적으로는 기존에 있었던 이념이나 지역 갈등을 넘어, 이제는 남녀 갈등처럼 새로운 갈등 구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럴수록 더욱 단합하고 국민적인 자존감을 고취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황룡사 9층목탑의 비전 제시는 과거를 관통해 현대에도 유용한 현재적 가치라고 하겠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자현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라이브 이슈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