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우려 낸 국물맛'으로 112년 전통 지켜 온 나주곰탕의 원조

이전기사

구독이 추가 되었습니다.

구독이 취소 되었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깊게 우려 낸 국물맛'으로 112년 전통 지켜 온 나주곰탕의 원조

입력
2022.09.17 04:30
0 0

<91>전남 나주곰탕 '하얀집'
1910년 개업해 4대째 운영 중
하루 평균 1,000그릇 팔려
나주 인근 최고급 소고기와 국내산 고춧가루 사용
최신식 공장 완성해 대량생산도 가능


길형선 하얀집 대표가 나주곰탕을 만들고 있다.

전남 나주는 고려시대부터 전주와 함께 호남 최대의 도시로 행정과 경제·군사·문화의 중심지였다. 913년 동안 유지된 나주목이 이를 입증한다. 곡창지대를 끼고 있어 농업과 축산업이 발달했다. 전국 최초의 5일장이 열릴 정도로 번성했던 나주지만 전국적으로 알려진 나주곰탕은 아픈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일제강점기, 나주 도축장에서 소를 잡아 살코기는 일본으로 가져가고 뼈와 부산물만으로 국을 끓여 밥을 말아 팔던 게 나주곰탕의 유래다.

호남 제1의 도시라는 타이틀은 광주에 내줬지만 나주 금성관길에는 지금도 10여 곳의 나주곰탕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1910년 개업 이래 112년간 전통을 잇고 있는 '하얀집'의 깊은 곰탕 국물맛은 단연 으뜸이다.

1969년 하얀집으로 상호 변경

112년 된 하얀집의 발자취가 식당 내부에 게시돼 있다.

지난 14일 나주곰탕 골목길에 들어서자 하얀 간판에 적힌 '하얀집'이라는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백년을 넘어 천년을 이어갈 나주곰탕'이란 글씨는 역사적인 장소 금성관 앞에 위치해 더 의미가 있다. 고려 공민왕 때인 1373년 지어진 금성관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객사로 쓰인 건물로 나주곰탕 골목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넘긴 오후 2시쯤 식당에 들어섰지만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내부 벽면에는 1910년 개업 당시 상호인 '류문식당' 시절부터 1969년 하얀집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1996년 길 대표가 이어받을 때까지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적혀 있다. 깨끗하게 정돈된 가게 입구에 들어서면 대형 가마솥에서 국물과 고기를 떠 흰쌀밥이 담긴 옹기에 토렴하는 주인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전통문화보전 대한민국 명인에 이어 향토음식 세계명인장까지 획득한 길형선 대표는 "하얀집 곰탕은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라면서 "새벽 2시부터 3시간 동안 가마솥에 소의 사골을 넣고 오래도록 끓여내 뽀얀 국물을 먼저 우려낸 뒤 양지머리·사태살·목살 등을 넣고 진하게 끓여낸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떠오른 기름기를 3시간 동안 말끔히 제거해, 맑고 담백한 국물맛을 낸다는 게 길 대표 설명이다. 보온력이 강한 옹기 그릇에 담긴 곰탕은 75도에 맞춰 손님상으로 나간다.

나주 인근 도축 한우만 사용


전남 나주의 하야진 고기보관 창고에 소고기가 보관돼 있다.

하얀집 곰탕맛의 비법은 재료에서부터 시작된다. 원재료인 소고기는 나주 인근에서 도축된 한우만 사용한다. 소 한 마리에서 등심하고 갈비 부분만 빼고 모든 부위가 곰탕에 들어간다. 곰탕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깍두기와 김치도 모두 국내산 고춧가루를 이용해 담근다. 1년간 소비되는 배추만 4만 포기다. 깍두기도 한 달에 330박스(20㎏)를 만들어 저온창고에 보관 후 숙성된 것만 손님에게 제공한다. 길 대표는 "10년 전 작고한 아버지한테 성실함과 좋은 재료 선택 방법을 물려받았다"며 "대기업과 전국 소상공인들이 분점을 요구하지만, 장사가 안 되면 이 점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많은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분점을 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4대에 걸친 주인장의 노력에 하얀집을 한 번 찾았던 손님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단골이 된다. 이날 서울에서 왔다는 박동주(65)씨는 "10년 전 나주 여행을 왔다가 하얀집 곰탕맛을 보고 반해 매년 철이 바뀔 때마다 찾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연매출 46억 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던 하얀집은 점심이나 저녁 식사 시간에는 대기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날 만난 하얀집 직원은 "하루 평균 1,000그릇은 기본이고 최대 2,500그릇까지 팔린 적도 있다"며 수육곰탕도 있지만 손님들 대부분은 일반곰탕을 시킨다"고 했다.

길 대표가 가게를 본격적으로 이어받은 것은 26년 전이다. 3대째 식당을 운영했던 부친이 갑작스럽게 폐암으로 사망하자 다니던 공기업을 그만두고 하얀집 운영에 나섰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길 대표는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소고기 구입도 해봤고 간간이 새벽에 부친과 곰탕을 끓여낸 기억도 남아 있었다. 1970년대까지 창작과 연탄을 가지고 곰탕을 끓여냈던 할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걸 안 길 대표는 최근 인근에 최신식 공장을 완성했다. 저온창고와 가마터, 수육 작업실까지 갖춘 공장을 시범운영 중인 길 대표는 내년부터 대량 생산에 나설 생각이다.

5대째 가업 이어가는 과정

나주 금성관과 나란히 있는 하얀집

4대째 전통을 이어온 하얀집은 5대로 맥을 잇는 과정에 있다. 둘째 딸이 신축한 공장 대표를 맡고 있고,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아들도 올해 호텔조리학과에 편입해 대를 이을 준비를 알차게 하고 있다. 길 대표는 "하얀진 곰탕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도록 체계를 어느 정도 갖춰 놨기 때문에 젊은 자녀들이 잘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내가 자신 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장인으로, 천년까지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 나주시 하얀집 위치. 그래픽=강준구 기자

길 대표는 나눔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지난 4월 대한적십자가 진행하는 나눔확산 캠페인 '씀씀이가 바른식당'에 동참한 게 대표적이다. 매월 정기적인 기부로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캠페인에 참여한 길 대표는 "정성껏 만든 음식처럼 나눔에도 정성을 다할 것"이라며 "하얀집이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어려운 사람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얀집은 사랑의열매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과 나눔을 실천 중이다. 또 나주 장애인 자립생활센터와 나주시 장학회도 후원하고 있다.

길형선 대표가 최근 지은 공장 내부를 설명하고 있다.



나주= 글ㆍ사진 박경우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방방곡곡 노포기행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라이브 이슈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