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짝 맞으며 사표 썼지만... 공직 밖에서 기회를 발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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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짝 맞으며 사표 썼지만... 공직 밖에서 기회를 발견했죠"

입력
2022.09.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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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을 떠나 스타트업으로 간 세 사람]
어깨너머로 목격한 스타트업 생태계
자기주도적 업무·효율성 추구에 끌려
"처음엔 두려워 사표 못 내… 결국 결심"

편집자주

지금은 '대이직의 시대'입니다. 평생 한 곳의 직장만 다니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제2의 인생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죠. 여기 평생근속이 보장되는 공무원, 공공기관 연구원이라는 안정적 일자리를 마다하고, 실력만이 살아남는 정글, 스타트업으로 뛰어든 세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왜 이런 무모한(?) 선택을 했고, 어디에 꽂혀서 안정을 버리고 도전을 택한 걸까요? 한국일보가 만나봤습니다.

공직사회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3인방. 허필중(왼쪽 사진부터) 마이리얼트립 재무관리실장, 이원강 엑스엘에이트 한국법인장, 모상현 퓨처플레이 수석심사역. 배우한·왕태석 기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영상 콘텐츠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하는 기술을 보유한 미국 스타트업 엑스엘에이트(XL8).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전성시대의 필수 요소인 번역 플랫폼을 제공하는 이 기업의 한국 책임자는 좀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원강(43) 법인장의 전 직함은 바로 서울시 버스정책과장. 수도 서울의 대중교통 정책을 책임지던 행정고시 출신의 잘나가던 서기관이, 돌연 맨땅에서 시작해야 하는 소규모 스타트업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사 시절 어깨너머로 본 실리콘밸리를 동경하다 못해 아예 '그 세계'로 직접 건너갔다. "이 세계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실리콘밸리 열병'을 떨칠 수 없었고, 결국 공무원 15년차에 사표를 냈다.

여행 스타트업 마이리얼트립의 허필중(36) 재무관리실장은 기획재정부 사무관 출신이다. 기재부 시절 스타트업계 거물들을 만나 비상(飛上)을 꿈꾸게 됐다. 스타트업 겸 액셀러레이터(AC·창업기업에 투자하고 보육하는 회사) 퓨처플레이의 모상현(39) 수석심사역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선임연구원 시절 스타트업 파견 근무를 했던 것을 계기로 국책연구기관을 떠나 AC 심사역으로 새 출발을 했다.

칼 같은 정년과 든든한 연금을 보장하는 공직사회는 왜 이들을 붙잡지 못했을까. 이들이 이직을 결심하면서 마주했을 고민, 스스로 던졌던 질문과 마침내 내렸던 해답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젊은 날엔, 정부가 사회를 바꾼다고 믿었죠."

이원강 엑스엘에이트 한국법인장

이원강 엑스엘에이트 한국법인장이 7일 서울 서초구 양재AI 허브에서 회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애초 공직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세 사람은 정부와 공공부문이 세상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공직에서도 전문성을 쌓는 것은 가능했다. 박봉이기는 했지만 정년 보장과 평생 연금까지 따지면, 공직자로 정년에 이르는 것이 결코 손해는 아니었다.

이원강(이하 이)=젊은 날의 이원강은 정부가 대한민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동시에 나도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가난한 집 아들에 아픈 동생을 두고 있다 보니 안정적인 삶도 원했죠. 공직 생활 15년 하면서 좋은 공무원 되려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응하면서 두 달간 집에 못 가고 대통령 표창 받았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허필중(이하 허)=원래는 공인회계사로 일하며 조세 전문가를 꿈꿨어요. 과세당국을 상대할 일이 많았는데, 직접 세제정책이나 입법 활동을 하면 조세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와중에 민간경력채용제도로 기재부 사무관에 지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덜컥 합격했지요.

모상현(이하 모)=전자전기공학을 전공해 삼성전자나 SK텔레콤에 입사하는 것도 가능했어요. 하지만 ETRI는 대기업에 비해 연구를 자율적으로 할 수 있으면서도 당시로선 대기업과 연봉 차이도 크지 않아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공직 생활, 기대와 다른 점도 있었습니다."

모상현 퓨처플레이 수석심사역

8일 서울 성동구 퓨처플레이에서 만난 모상현 수석심사역. 왕태석 선임기자


직접 경험한 공직사회는 어땠나요?

바늘 구멍을 뚫고 공직에 입성했지만, 업무와 조직 문화 측면에서 기대했던 것과 달랐던 점도 있었다.

모=13년간 ETRI에 있었어요. 3년 단위로 연구 과제를 수행했는데, 2년간은 연구하고 나머지 1년은 새로운 과제를 기획하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고, 행정적 업무도 생각보다 많았어요. 성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지 않았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업무가 더 몰리곤 했죠.

허=기재부 사무관이 되면 세제실에서 조세 분야를 깊게 파는 걸 기대했어요. 하지만 기재부라는 부처 특성상 정책 업무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다양했지요. 정책 쟁점을 정리하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거나 조율하는 일이 많았어요. 조직 문화가 수직적이고 답답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보고서에 빨간 줄이 그어지고 상사에게 혼 나는 도제식 교육 덕에 빠르게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70, 80년대에는 정부 주도로 사회 변화가 이뤄졌다면, 제가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민간으로 변혁의 헤게모니가 이동하고 있음을 느꼈어요. 정부 역할은 점점 민간을 지원하는 것에 머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와 그 세계 사람들, 정말 새로웠습니다."

허필중 마이리얼트립 재무관리실장

허필중 마이리얼트립 재무관리실장이 7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당신의 마음을 흔든 '그 순간'은 언제였죠?

이들의 공통점은 공직 생활을 하며 스타트업 생태계를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경험으로 이들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고, 이직을 꿈꾸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꿀 더 나은 기회가 조직 밖에 있다는 사실, 그것이 이들을 바뀌게 했다.

허=기재부 혁신성장본부에 있으면서 스타트업계 관계자들을 수십 명 만났습니다. 이재웅 쏘카 대표가 혁신성장본부 민간본부장이었고,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등도 만났죠. '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세상에 굉장히 많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공무원 생활 2, 3년차에 많이 흔들렸어요.

모=2018년 ETRI 연구원 신분으로 대학 선배가 창업한 스타트업에서 일한 게 이직의 계기가 됐어요. 당시에는 스타트업을 하나도 몰라 두려웠지만, 연구원 생활도 10년차에 접어든 데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어요. 그러다 ETRI에 연구인력 현장지원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연구원 신분으로 스타트업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샌프란시스코 영사로 일하며 실리콘밸리 사람들을 많이 만났죠. 서울시에 복귀했을 때 실리콘밸리의 장점을 서울시에도 이식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삼성 LG SK 등 대기업과 구글 애플 테슬라 등 빅테크 관계자들,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 사람들도 만났어요. 이 세계를 알아가다 보니 자신만의 비전을 가지고 기술로 세상을 바꾸며 주도적으로 일하는 게 정말 부러웠어요. 예전엔 대기업에 가거나 공무원이 되면 성공한 길이었는데,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길을 내고 있더군요.

"사표 내겠다니까 아내가 등짝 스매시를 날렸죠."

이원강 엑스엘에이트 한국법인장

이원강 엑스엘에이트 한국법인장. 배우한 기자


막상 사표 쓸 때 두렵지 않았나요?

이들은 스타트업을 동경하게 됐지만, 사표를 가슴에 품고 오랜 기간 고민했다고 한다. 공직에 있다가 스타트업으로 가는 건 그들 자신에게도, 남들의 눈에도 크나큰 모험이었다.

이=처음엔 서울시로 돌아가 스타트업 경험을 할 수 있는 민간근무휴직제도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서울시도 제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고요. 부이사관 승진을 2, 3년 앞둔 시점에 사표 쓴다는 건 너무 두려웠어요. 한 번도 '민간 물'을 먹은 적이 없었고, 나름 공무원으로서 만족감도 컸기 때문이에요. 잘못하다 실직자 되는 거 아닌가 걱정도 됐지요. 아내에게 얘기를 꺼냈더니 등짝을 몇 번 때린 뒤, "가, 안 돼도 한 달에 200만 원은 벌어와"라고 하더군요.(웃음)

허=공무원 하다 스타트업으로 점프하는 게 선뜻 쉽지가 않았어요. 무섭고 용기가 나지 않았죠. 공무원 조직은 미래 자신의 성장 궤도가 굉장히 명확하게 그려져 있잖아요. 몇 년 후면 승진하고, 가질 수 있는 권한과 하는 일이 정해져 있고. 결국 스타트업 대신 민간 회사들의 답이 안 나오는 문제들을 풀어주는 컨설팅회사를 먼저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에 스타트업으로 가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스타트업은 '성장중독자'들을 위한 세계입니다."

모상현 퓨처플레이 수석심사역

모상현 퓨처플레이 수석심사역. 왕태석 선임기자


어렵게 간 스타트업은 어땠나요?

이들이 경험한 공직사회와 스타트업은 어떻게 달랐을까? 공직에서 느꼈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을까?

모=공공기관은 과정을 중시하고, 사고를 치면 안 되는 안정적인 조직문화가 있죠. 그러다 보면 성장이 뒷전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스타트업은 효율과 생산성에 모든 걸 집중해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장중독자'들이에요. 내가 잘하면 나도 성장하고 회사도 성장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죠. 성과에 대한 보상도 확실하고요.

이=공무원은 모든 업무가 딱 정해져 있어요. 업무 분장표에 따라 하는 일이 주어지고, 전임자가 하던 일을 읽어보는 데서 업무가 시작됩니다. 특히 '늘공'(직업 공무원을 뜻하는 '늘 공무원'의 줄임말)들은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하거나 홍수, 감염병 터지는 일 막기에 급급하지요. 그런데 스타트업은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휴가는 언제 얼마나 갈지, 월급은 며칠 날 보낼지 제가 하나하나 다 정해야 하죠.

허필중 마이리얼트립 재무관리실장. 배우한 기자


다시 회사를 옮기진 않을까요?

누구도 평생 직장을 꿈꾸지 않으며, 언제나 다른 곳에서 일할 준비가 된 대(大)이직의 시대. 이들은 또다시 이직을 꿈꾸게 될까.

허=처음엔 조세 전문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직을 했는데 결론적으로 잘 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점점 어디서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결국 제 자신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곳이 제가 일해야 하는 곳이 아닐까요.

이=일단은 인생 2모작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어떤 열매가 열릴지 모르지만. 스타트업계에서 최소 10년은 버티는 게 목표입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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