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24% 임금 인상도 거절한 철도노조
'근로조건 개선' 우선 요구하는 파업 잇따라
수십 년 무노조 방침 무너지는 대기업들
팬데믹 거치며 삶의 질 중요시…"노동운동 부활"
이 파업은 더 이상 돈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아플 때 해고되지 않고 휴가를 내서 병원에 갈 수 있기를 원한다.
30년 만의 파업을 앞둔 미국 철도노조 기관차조합(BLET) 대표 데니스 피어스는 12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말했다. BLET와 함께 캘리포니아주 소노마마린 지역 철도노동자 조합(SMART)도 노사 협상이 진전되지 않으면 17일부터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두 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6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2024년까지 2020년 대비 임금 24% 인상과 보너스 5,000달러 지급을 약속하는 정부 측 협상안도 거절했다.
임금 인상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퇴근 후에도 상사의 호출에 대기하고, 주 6~7일씩 일하는 열악한 근무 환경부터 고쳐 달라는 의미다. 제레미 퍼거슨 SMART 대표도 "단순 임금 문제였다면 협상은 이미 타결됐을 것"이라며 "우리는 임금 인상이나 건강보험 그 이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미 전역 파업·노조 결성 이어져
한때 미국 노동자의 필수 덕목으로 여겨지던 '허슬(hustle·성공을 위해 일에 모든 시간을 쏟아붓는 것)' 문화는 옛말이 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팬데믹을 거치며 돈 많은 삶보다 '균형 잡힌 삶(워라밸)'을 더 원하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정년 전의 나이에 스스로 퇴사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진 데 이어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이 속출하는 이유다.
미네소타와 위스콘신에서는 같은 날 1만5,000여 명의 간호사가 파업을 시작했고, 시애틀에서는 나흘째 6,000명이 넘는 교사들이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공통점은 인력 충원 등을 통해 과잉 노동을 멈춰달라는 것. 메리 터너 미네소타간호사협회 대표는 CNN방송에서 "우리는 임금 때문에 파업을 하는 게 아니라, 근무환경과 워라밸과 관련해 더 많은 목소리를 내고 싶은 것"이라고 밝혔다. 코넬대 집계에 따르면 올해에만 미국에서 263건의 파업이 벌어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4% 늘어난 수치다.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도 활발하다. 스타벅스, 애플, 아마존 등 대기업이 수십 년간 고집해온 '무노조' 경영 방침은 팬데믹 동안 무너졌다. 특히 스타벅스의 경우 최근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200개가 넘는 지점에서 노조가 결성됐다. 노조원을 해고하거나 비노조원에게만 보너스를 주는 등 경영진의 방해에도 노조 결성 의지는 꺾이지 않고 있다.
팬데믹 겪으며 노동운동 중요성 깨달아…제2 전성기
최근과 같은 노동운동 강화는 미국에서 이례적인 모습이다. 미국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1964년 전체 3분의 1 수준에서 지난해 약 10%까지 계속 줄어드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팬데믹 시기 △코로나19 감염 위험에도 일터로 내몰리고 △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실질 소득이 늘지 않는 데다 △빈부격차가 계속 커지자 노동운동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노동운동 성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1900년대 초중반 제1 노동운동 전성기에 이어 제2 전성기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있다. 토드 배콘 러트거스대 노동학 교수는 "(노사 협상에서) 비경제적인 조건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부활을 시사한다"며 "노동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끌어오는 요구가 포괄적일수록 이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기업계에서 살아남을 가능성도 높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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