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해제 후 첫 추석 맞은 보육원 풍경
3년 만에 다같이 명절 식사…반가움은 같아
“큰엄마, 살 빠졌네요.” “선욱이 너도 멋있어졌다. 잘 하고 있지?”
추석을 하루 앞둔 9일 오전,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보육원 ‘이든아이빌’에 시설을 퇴소한 자립준비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추석을 맞아 보육원 가족과 같이 점심을 하기 위해서다. 큰엄마는 아이들이 이소영(64) 원장을 부르는 별칭이다. 선생님들 중에 가장 큰 사람이란 뜻이다. 2년 전 시설에서 나와 약재업체에서 일하는 정선욱(20ㆍ가명)씨가 선물로 가져온 공진단을 건네자, 이 원장은 “뭘 이런 걸 사왔느냐”고 타박하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여느 가정의 명절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3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올해도 아직 감염병이 유행 중이라 추석 분위기까지는 내지 못했다. 초등반 한 아동은 “큰엄마, 이번에도 전 못 부치나요”라며 아쉬워했다. 이 원장은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마호크(돼지 뼈등심)와 양념치킨, 게장 등을 잔뜩 준비했다. 40여 명의 보육원 식구들은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밥과 덕담을 나눴다.
장애 등을 이유로 시설을 떠난 가족들도 보육원을 찾아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4년 전 학교 적응, 진로 문제 탓에 광주광역시의 한 장애인 시설로 거처를 옮긴 이모(16)양은 “친구들이 많아 여기가 제일 좋다. 연휴 마지막 날까지 있다 가겠다”면서 들뜬 표정을 지었다. 나이가 어린 초등반 아이들은 시설 지하에 마련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인근 뚝섬한강공원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며 명절을 즐겼다. 2년 전 퇴소해 서울 한 피트니스센터에서 개인 강습을 하는 홍정현(가명ㆍ20)씨는 “동생들이 부쩍 자란 모습을 보니 가슴 뭉클하다”며 “마음이 편안해져 자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이 원장은 “생각한 것보다 더 밝지 않나. 시설 아이들은 침울할 것이라고 보는 선입견이 있다”고 했다. 보육원의 어두운 이미지만 부각되다 보니 원생들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집에서 크는 애들보다 밝게, 꿈을 최대한 지원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사회생활 출발점에 선 청소년들은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선욱씨와 정현씨에겐 최근 퇴소를 앞둔 동생들의 연락이 많아졌다. 광주에서 두 청년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자립준비청년들이 처한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이들은 “막상 세상에 나가면 혼자 내던져진 것 같지만 너무 큰 걱정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선욱씨는 “혼자 끙끙대지 말고 힘들 때면 선생님이나 자립 선배들한테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했다”면서 “퇴소 뒤 무엇을 할지 미리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현씨도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나 만들면 도움이 된다”고 거들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정서적 지원’을 가장 원하고 있다. 현재 이든아이빌에서 22명이 자립 지원을 받고 있지만, 담당 교사는 한 명뿐이다. 선생님이 워낙 바쁘다 보니 도움이 필요해도 혼자 감내하는 청년들이 많다. 이 원장은 “물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정서적 부분을 잘 보듬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애프터 서비스’도 확실히 했다. 퇴소한 청년들 집에 들러 어떻게 사는지 꼼꼼히 살폈다. 소고기, 떡 등 추석 음식을 주면서 “상하니 빨리 먹으라”라며 큰엄마다운 당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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