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코엑스서 열린 '프리즈 서울' 본 해외 매체 평가
'차세대 아시아 허브' 가능성 속 "시간 더 필요하다"
"홍콩에 비해 덜 국제적" 평가에 국내 네티즌 불만도
태풍 '힌남노'가 남부지방을 급습하기 전 주말, 서울 미술계엔 큰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미술장터) '프리즈'의 서울판이 첫선을 보이면서다. 사실상 공동 개최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까지 포함하면 2일부터 6일까지 코엑스에서 미술시장에 큰 장이 선 셈이다.
해외에서도 이번 행사는 서울이 홍콩에 이은, 혹은 홍콩에 버금가는 '차세대 미술 허브'를 노릴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로 시선을 모았다. 일단 이번 행사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화랑 다수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형 행사에 집결했고, 수요 측면에서도 미술시장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한국의 유명인과 일반인은 물론 해외 수집가들까지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아트페어 구경 와서 RM도 보고, 덕수궁관 전시도 보고
영어 미술 전문 매체인 아트뉴스, 아트뉴스페이퍼, 아트넷 등은 들뜬 '서울의 여름' 분위기를 집중적으로 전달했다. '~의 여름'이란 사전적으로 여름 그 자체를 말하기도 하지만 절정에 이른 열기를 담는 관용적 표현이기도 하다. 프리즈 서울을 전후해 서울 곳곳에서 벌어진 화랑과 명사들의 파티, 패션 브랜드의 이벤트는 물론 주변의 미술 전시까지 분위기를 꼼꼼히 전달했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한 키아프가 노출의 '낙수효과'를 받았다. 국내에선 "프리즈와 비교해 인파가 적었다"며 아쉬움을 표했지만 해외 매체들은 화랑협회가 처음으로 해외 매체 기자들을 초대해 홍보에 나선 덕분인지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아트뉴스는 '키아프에서 주목할 만한 부스 5개'를 따로 다루면서 한국 작가 작품을 소개했다. 아트뉴스는 서울에서 열린 다른 미술전시도 덩달아 주목했는데, 페어와는 거리가 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조각가 문신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크게 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음악과 영상매체 중심인 한국 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한국의 미술시장과 연결하려는 시도도 엿보였다. 아트뉴스페이퍼는 방탄소년단(BTS) RM이 프리즈에 등장한 것을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일가나 유제니 공주의 프리즈 런던 방문, 할리우드 스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프리즈 로스앤젤레스 방문에 빗댔다. 지난달 말에 뉴욕타임스는 RM을 미술 작품 수집가이자 후원가로 크게 다루는 기획 기사를 낸 바 있다.
차세대 아트 허브 경쟁 "일단 서울 승리, 하지만..."
아트뉴스페이퍼의 조지나 애덤 편집장은 칼럼을 통해 아시아권 미술 시장의 중심지를 노리는 경쟁의 한 단면으로 프리즈 서울을 바라봤다. 그에 따르면, 프리즈 서울의 개최는 프리즈 입장에서 보면 아시아 시장을 노리고 아트바젤 홍콩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술시장에서 홍콩이 위기를 맞은 가운데 차세대 거점으로 서울을 주목하고 있다는 신호기도 하다. 그는 프리즈 서울의 성공을 계기로 "일단 지금은 서울의 승리"라는 평을 남겼다.
그동안 거대한 중국 시장의 관문이면서도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이점을 누렸던 홍콩은 최근 중국 정부의 통제가 강해지면서 미술 시장의 거점으로서의 매력을 조금씩 잃었다는 평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에 입각해 강도 높은 통제를 하고 있는 반면, 한국이 일찍부터 개방 행보를 하고 있다는 점도 상대적인 강점으로 부각됐다.
아트넷 등 다른 매체들은 코로나19 시대에 급격히 성장한, 밀레니얼과 Z세대(1990년 중반 이후 출생)를 아우르는 '청년 수집가'의 등장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한국의 대세 하락 중인 부동산, 급격히 붕괴하는 암호화폐 시장, 금융 건전성을 고려한 각종 규제 등을 피해 청년층이 유난히 투자 대상으로서 미술품에 주목하고 있다는 배경 설명도 덧붙였다. 한편으로 한국 미술이 국제적 경쟁력은 뒤처져 있다 하더라도 내놓을 만한 독자적 콘텐츠가 있다는 점 자체는 경쟁 도시인 싱가포르보다 우위로 평가됐다.
이런저런 낙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아트 허브'로서 서울은 시작점에 서 있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등에 비해 미술품에 관대한 세율과 시장의 개방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배후지로서 미술시장을 떠받칠 구매력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수십 년간 아시아 시장의 관문이었던 홍콩의 이점도 쉽게 사라질 리 없다. 국제적인 화랑들은 변함 없이 홍콩에 거점을 두고 있다.
프리즈 서울과 비슷한 시기를 노려 서울에서 비경매 전시회를 개최한 미술품 전문 경매사 크리스티의 프랜시스 벨린 아태지부 회장은 "향후 몇 년 동안 서울에서 경매를 개최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서울의 구매력이 적어서라기보단 온라인 경매로 충분하다는 전략적 판단의 성격이 더 강하다. 청년 수집가들은 대부분 온라인 경매 참여를 선호한다. 또 벨린은 "서울엔 수집가와 기관, 국가 지원 등 모든 것이 있다. 필요한 것은 시간일 뿐"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국제적이지 못한 서울" 평가에 SNS선 갑론을박
미술시장의 평가와는 별개로 매체들이 서울 방문을 다루는 서구 중심적 시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트넷에 인용된 칠베르만 갤러리의 설립자 모이츠 칠베르만의 평가가 도화선이었다. 그는 아트페어를 유치하는 서울의 단점으로 △언어 장벽 △구글 지도의 호환성 부재 △택시 잡기의 어려움 △원화로 표시된 가격을 들면서 "홍콩에 비해 덜 국제적"이라고 지적했다.
칠베르만은 "이런 문제는 극복될 것"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해당 부분은 "거만한 태도"라거나 "한국에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한국의 상황을 따라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상품 가격의 원화 표기' 문제는 "영국에서 파운드화, 유럽에서 유로화를 쓴다고 같은 불평을 했겠느냐"며 서구의 고질적인 아시아 주변부화 태도를 드러낸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현장에선 거꾸로 한국 측 구매자들이 가격이 달러로만 표기된 해외 화랑의 상품을 구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목격담도 있었다.
택시난 문제는 현재 방문객뿐 아니라 서울 거주민들도 겪고 있다는 면에서 보면 황당한 비판처럼 보인다. 하지만 특히 서울이 낯선 방문객들 입장에선 꽤 중요한 문제였다. 아트뉴스페이퍼도 서울의 택시 공급 부족으로 인해 연일 늦게까지 계속된 파티 참석자들이 곤란을 겪었다고 밝혔다.
다만 이 매체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택시 운전자들이 배달업으로 대거 갈아탔다"면서 한국의 배경 상황도 소상히 전달했다. 또 "같은 방향으로 택시를 탄 이들이 더욱 친해지고 새로운 로맨스가 싹트는 경우도 있었다"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해석을 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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