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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병역기피 조력자들

입력
2022.09.0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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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BTS). AFP=연합뉴스

그룹 방탄소년단(BTS). AFP=연합뉴스

“정부가 앞장서 한류 홍보를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얼마 전 만난 외교부 당국자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 K팝, 특정 연예인이 활약하면 정부가 득달같이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해외에 자주 파견되는 외교관들은 동원되기 좋았다. 가령 한류 홍보 문구가 새겨진 부채를 쥐어 주며 상대국 당국자들에게 나눠주라는 식으로.

그러나 고유문화도 아닌 특정 기획사의 상품을 정부가 나서서 치켜세우는 건 낯 뜨거운 짓이다. 명실상부 세계 10위 경제대국 아닌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해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격상했다. 후진국다운 집착은 그만둘 때도 됐다. 가만 있어도 민간에서 알아서 잘한다.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BTS 입대 여부를 여론조사로 정하자”는 황당한 이야기가 나왔다. 20세기에나 썼을 법한 ‘한류 스타의 국위선양’이 이유였다. 국방의 의무를 인기 투표로 정하겠다니. 특히 국방장관의 호응에 할 말을 잃었다. 징병제 포기 선언으로 들려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연상되는 병역 비리가 판칠 때도 청년들은 '병역 파업' 없이 입대했다. 그것이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지만 비상식과 타협하지 않는 국방부의 역할도 컸다고 생각한다. 문체부와 과기부, 산업부, 정치권이 병역특례를 남발할 때마다 홀로 ‘NO!’를 외쳤다. 병역제도를 우롱했다는 이유로 20년째 유승준의 입국을 거부하고, 싸이를 두 번 군대에 보낸 대한민국 국방부다. 상당수 청년들은 그런 군을 믿고 훈련소로 향했을 거다.

2009년 7월 11일 가수 싸이(박재상)가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두 번째 군 복무을 마치고 제대하는 모습. 뉴시스

2009년 7월 11일 가수 싸이(박재상)가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두 번째 군 복무을 마치고 제대하는 모습. 뉴시스

살인적 스케줄을 소화하는 BTS의 대학생 멤버 1인을 제외한 6명이 같은 사이버대학원에 다닌다. 현행 병역법은 석사는 26세, 박사는 28세까지 입대 연기를 허용한다. 이 나이를 넘기면 병무청이 매년 말 공개하는 병역기피자 명단에 오른다. 2015년부터 시행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BTS만 빠졌다. 국회가 2년 전 맞춤형으로 법을 고쳐줘서다. ‘문화 훈장을 받으면 30세까지 징집을 연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에 앞서 훈장을 건넸다.

다시 30세를 목전에 둔 BTS의 선택은 이번에도 ‘국회와 정부 떠보기’다. 한때 “군 입대는 한국인의 당연한 의무”라고 외쳤던 이들은 2년째 침묵하며 소속사 뒤에 숨어버렸다. 소속사는 지난 4월 “병역제도 변화 때문에 멤버들이 힘들어한다”며 국회에 계류된 병역법 개정안을 빨리 통과시켜 달라고 했다. BTS 같은 대중문화예술인도 대체복무를 허용해 달라는 내용이다. 국회가 BTS 눈치 보며 만든 개정안인데, 그것 때문에 힘들다니. 이 무슨 자작극도 아니고. 이쯤 되면 신종 병역기피다.

한 달 전만 해도 “BTS가 입대하는 것이 인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던 국방장관이 여론조사를 입에 올리는 순간, BTS는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이제 군까지 넘어왔다”고. 당국이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면 이들은 진작 복무를 마쳤을 거다. 미국이 징병제를 유지한 1958년, 온갖 특혜를 뿌리치고 입대한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완벽한 전설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국방부까지 만만해 보인다. ‘BTS 군대 안 보내려고 병사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려준 거냐’는 말까지 나온다. 누가 이들을 병역기피자로 만들었나.

정승임 정치부 기자

정승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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