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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된 세계 보여주는 김보영의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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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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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다섯 번째 감각

편집자주

차별과 갈등을 넘어 존중과 공존을 말하는 시대가 됐지만, 실천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모색한다, 공존’은 다름에 대한 격려의 길잡이가 돼 줄 책을 소개합니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다섯 번째 감각ㆍ김보영 지음ㆍ아작ㆍ440쪽ㆍ1만8,000원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의 언어를 모른다는 것을 깜박했군요. ‘청각’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아가씨.”(다섯 번째 감각 중)

우리는 SF소설이나 영화에서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 사회를 기대한다. 유전자 개량, 우주여행, 시간여행, 인공지능(AI), 사이보그 등 SF는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상상한다. 때로는 그 상상이 질병이나 고통이 없는 세계로 이어지기도 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결함을 해결해 주지만, 동시에 또 다른 인문학적 문제를 만든다는 공식은 성공한 SF물에서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SF가 반드시 세계의 진화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가가 김보영이다.

김보영의 소설 ‘다섯 번째 감각’은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SF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채연주는 언니 세연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죽으면서 혼란에 빠진다. 그가 아는 한 세연은 문화원에서 일하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언니가 죽은 뒤 찾아온 경찰들은 세연이 사이비 종교집단에 속해 있었으며, 죽기 전에 입을 움직여 주문을 외웠다는 의심을 한다. 예리한 독자들은 주문을 외웠다고 하면 되지 왜 굳이 ‘입을 움직여’라고 했는지 어색함을 느낄 수도 있다.

세연이 반사회적 집단의 일원이라고 지목한 경찰들은, 연주 역시 ‘듣고 말하는’ 인간이 아닌지 의심한다. 듣고 말하는 것이 초능력이자, 반사회적 성향의 증거가 되는 곳, 독자들은 소설의 중간쯤 와서야 이 소설이 청각이 없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보영은 ‘다섯 번째 감각’을 통해 정상성의 범위를 질문한다. 청각이 없으니 의사소통은 손으로 이뤄진다. 대화할 때 손을 쓰기 때문에 사람들은 말을 하면서 짐을 나르거나 요리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은 무능력하다고 비난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타자화되는 것은 들을 수 있는 쪽이다. 듣지 못하는 것이 비정상으로 명명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듣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시민이 되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이 된다.

감이 좋고, 인기척을 잘 느끼는 이들은 ‘말이 보이는’ 세계에서는 위험한 자다. 소리를 듣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것도, 경찰이 문을 열고 들이닥칠 것도 미리 알 수 있어서 ‘선량한 시민’을 무섭게 하기 때문이다. 청각은 단속해야 할 위험한 기술이 되고, 청력이 있는 사람은 스파이, 첩자, 예지자로 의심받는다. 능력과 능력 없음의 구분이 역전되는 것이다. 소설은 결국 문제는 이 둘을 구분 짓고 차별화하는 사회의 의식구조라는 점을 보여준다. 연주는 “귀로, 무엇을 할 수 있지요?”라고 질문하는 자에서 음악을 듣고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사회의 규범으로부터 해방된다.

김보영 작가. 아작 제공

김보영 작가의 단편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역시 정상성을 역전하여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가족들은 하루 일정 시간에 ‘기절하는’ ‘나’를 치료를 통해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난리다. 의식을 잃도록 내버려두는 것, 곧 잠을 자는 것은 지능이 낮거나 정신분열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잠이 기절이자 죽음이라는 것을, 매일같이 잠을 자는 우리는 생각하지 못한다. 다르게 보면 잠 역시 일종의 질병으로 명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가르는 능력주의는 장애를 ‘하지 못하는 것’이자 ‘무능력한 것’으로 상정한다. 그러나 손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속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비정상인이 되고,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잠은 질병이 되는 것처럼, 사회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능력과 장애는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김보영은 역전된 세계를 통해 정상성이 얼마나 허약한 개념인지를 보여준다. 장애나 질병은 타고나거나 후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청력과 시력이 떨어지고 보청기나 안경이 필요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장애로 여기지는 않는다. 나이 듦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보영은 지금 우리 사회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정상성의 경계를 뒤집어서 정상·비정상, 장애·비장애는 사회가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SF가 가진 힘이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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